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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활성화 방안에 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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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6-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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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8 19:00 조회 2,0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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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활성화 방안에 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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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밀교의 토양이 척박한 한국불교에 밀교의 법맥을 상승하고 이땅에 진정 정통밀 의 꽃을 피우기 위해 원정종조께서 총지종을 개종한지 어언 삼십년이 되었다. 이조 오백년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밀교인지라 창종 당시의 교화의 어려움은 어찌 글로써 다 표현하랴. 온갖 곤란을 무릅쓰고 교세발전을 위해서 무진서원으로 애쓰시던 종조님을 비롯하여 창종 당시의 선대 스승님들과 보살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불교에 있어서 불교사를 새로 써야할 만큼 우리 종단의 위상이 몰라 게 달라진 것은 교계가 인정하는 바이다.

이는 1,600여 년 한국불교사에 있어 하나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앞만 보고 힘차게 달려온 우리 종단은 미래의 급변하는 상황을 전혀 예측 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 탓으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신교도 제도에 관한 문제와, 둘째는 승직자양성에 관한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 두가지 원인이 결국 교화의 정체성을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적어도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근본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교화의 부진은 계속될 것이며 나아가서 종단의 미래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교화의 정체성이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며 총지종의 흥망성쇠의 주역은 우리들의 몫으로 돌아 왔다. 종교는 새롭게 인식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는 소멸의 길로 간다는 사실을 종교사가 입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실갈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종교는 생명력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교화란 부처님의 진 리로 중생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생명체를 가진 즉 유정물은 다 부처님의 교화의 대상이 된다. 본 난에서 다루고자 하는 교화는 광의의 뜻이 아니라 어떻게 히면 많은 신교도들이 입교를 할 수 있는지 또 입교를 하지 않는디면 왜 그런지, 원인이 있다면 사람에게 있는 것인지 제도가 잘 못되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물론 ‘교화활성화 방안’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문제에 해결점을 접근해 볼려고 노력하지만 탁상공론에 그칠지도 모른다. 사실 이론과 현실은 어떤 면으로 볼 때 천양지차일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교화부진의 총체적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전 승단이 공감대를형성하고 지혜를 모으자는데 그 의의가 있다.

저의 생각이 새로운 대안으로 종무에 반영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또 그렇게도 할 수 없으며, 만에 하나라도 종단발전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디면 승단의 일원 으로써 본분을 다 했을 뿐이다. 심각한 교화문제는 노보살님들이 떠난 자리는 누가 메꿀것인가 하는 이 문제는 어제오늘에 불거져 나온 것은 아니며 어느 특정인 의 문제를 떠나 승단이 고민하기 때문에 저 혼자 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던진 다는 것은 이란투석이고 또한 비웃음 거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만은 종단의 사활이 걸려있으므로 승직자의 일원으로써 간과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금 당장은 한 개인 어느 사원이 교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방치한디면 종단의 미래는 보장할수 없음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먹는냐 먹히느냐의 심각한 종교전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최후에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늦었다 싶을 때 대책을 세우는 것이 빠르다는 것임을 명심해야 힌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승직자 모두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여기에 대한 제언이 봇물 쏟아지듯이 나오기를 필자는 기대해 본다. 혜암통리원장께서 “종단이 나 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종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 저 생각하라”는 취임사의 일부분을 아마 도 잘 기억할 것이다. 지금 종단이 겪고 있는 실체를 정확히 진단히면 우리 스스 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될 마지막 단계까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는 승속이 따로 없고 집행부와 승단이 따로 없다. 작은 것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창의적인 아이디를 많이 제안하고 집행부는 귀를 기울어 승단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들어야 힌다. 이제부터 교화의 부진에 대한 원인을 가식없이 솔직하게 나열하고 거기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기로 하자.


교화 정체성의 원인과 대책

1. 교화의 전략을 바꾸자.

해방의 기쁨도 채 가시기전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아 국민경제생활은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외래종교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도 우리 민족이 겪었던 비극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이십년 뒤 겨우 먹을 것은 해결할 시기인 70년대 초에 우리 종단이 고고의 소리를 울리고 창종을 하였다. 창종한 후 포교의 주 대상을 살펴보면 첫째는 의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병든 사람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포교를 하게되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마음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한 사람이라도 해탈시키면 줄줄이 제도가 되었다. 육신의 병이라도 한첩의 약을 먹지 않고도 해탈한 보살은 부지기 수이다.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으로 짓는 것이니 육체적인 질병도 예외는 아 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의학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인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으므로 병이니면 시설 좋은 병원을 선택하여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굳이신앙을 통해서 질병을 고칠 사람이 거의 없어진 셈이다. 현대인은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많은 탓인지 과중한 업무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쌓여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예전보 다 훨씬 더 늘어났지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신앙을 통하여 고행하기를 꺼린다.

현대인은 무엇이든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꺼리기 때문에 불공하는 것도 쉽고 간단하게 할 수 있도록 착안을 두고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야 핸다. 종조님 말씀에“불공중에 오는 마장은 육행약으로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만일 불공중에 몸이 아픈 법문이 있다면 불공만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어렵다고 하겠다. 솔직히 스승도 이런 경우는 꼭 진리로써 해결하라고 고집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왜냐하면 보살들이 아프면 약과 병원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에 틈이나서 불공을 한다해도 쉽게 해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질병으로 입교하는 신교도가 거의 없어 졌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가난 해탈이다. 새마을운동으로 겨우 먹는 것은 해결됐다 히더라도 하류층에는 아직도 먹고사는 것이 큰 화두임이 분명했다.

우리 종단의 가장 큰 특징이 매일하는 정송과 정시로 복의 씨를 심고 밥을 지을 때미다 식구수대로 한 숟가 락의 쌀을 부처님께서 공양 올리므로서 식록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절양희사법이 있다. 이 법을 의심없이 그대로 실천한 보살님은 현재 경제적으로 해탈되지 않는 가정이 드물 정도이다.

쌀알 하나 하나에 공덕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절양희사법은 갑자기 들이닥친 마장을 없애는데도 상당한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물론 법대로 희사를 해도 왜 안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거기에 대한 해답은 탐심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초창기에는 가난한 사람이 제도가 많이 되었지만 이제는 국민 스스로가 중산층이라 할 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다보니 이것마저도 제도의 서상을 잃어버린 셈이다. 

세번째는 미신타 파를 꼽을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 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질병, 관재, 사업실패 등 가정에 이러한 우환이 있을때 마다 미신에 많이 의존해 왔다. 미신으로 인해 불행으로 좌초한 가정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만큼 당시에는 미신에 많이 의지해 왔다. 신흥 외래종교의 성공전략도 미신타파에 있었으며 우리 나라 국민 대다수가 신앙하고 있던 불교 마저도 미신으로 간주하고 혹세무민하여 신흥종교로 유도했으니 다른 신앙의 형태 는 말할 필요가 없다.

미신에 대한 접근은 대부분 무지일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것만은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정서 에 올바른 믿음을 제시하는 종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급한 국민성도 어쩌면 미신과 잘 맞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 당 의 사회적환경과 국민정서가 맞닦뜨려 정통밀교가 현교도 김히 할 수 없는 '한 을 제시한 결과로 미신 때문에 불행을 겪었던 가정이 제도되어 점차 해탈되어  정되어 감에 따라 많은 가정을 밀교로 인도하게 되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에 대한 포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핵력수준이 높아지고 기초과학을 공부 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히려고 한다. 그래서 미신에 대한 시각도 많이 달라졌으며 거기다가 다종교시대에 종교가 많은 역할을 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미신 때문에 불행을 겪는 가정을 제도하는 것도 대상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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