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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의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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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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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6-04 13:18 조회 1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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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의 활성화
붓다 및 초기불교 교단, 의례에 대해 소극적 ... 밀교시대, 공양법·호마·명상법 의례 갖춰

시대 상황의 변화


붓다 및 초기 불교 교단은 의례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밀교의 시대가 되면 공양법, 호마, 명상법(사다나, 성취법) 등의 의례를 적극적으로 행하게 된다.


이런 구제방법의 변화는 전체적으로 세속적이긴 하지만 부정작업의 완화라고 할 수 있다. 

업이나 번뇌를 없애려는 부정적 태도는 전통적으로 지멸의 길(니브리띠 마르가, Nivritti marga)로 불리고, 세간적 행위를 적극적으로 행해 마음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태도는 촉진의 길(쁘라브리띠 마르가, Pravritti marga)로 불려왔다. ‘구사론’에서 볼 수 있는 업이나 번뇌를 없애가는 방법은 지멸의 길을 대표한다. 

반면 밀교에서 볼 수 있는 일상에서 적극적인 태도는 촉진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정적 태도 혹은 현세 거부 완화가 밀교의 특질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불교가 가진 구제방법이 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 나아가 인도의 여러 종교가 놓여있던 역사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원래 불교는 도시사회에서 개개인의 정신성을 중시하는 종교였다. 

아리아인은 펀자브 지역에 침입하고 나서, 약 1,000년을 걸쳐 동인도까지 이동해 갔다. 이 이동이 끝난 기원전 5세기 무렵의 동인도에서는 무사와 상인들이 득세하는 지역이 늘고 있었다.


당초 불교는 이러한 무사나 상인들이 받쳐준 것이었다. 그러나 무역상대였던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상인층은 세력을 잃고 7세기 중기 이후 인도는 농촌을 중심으로 한 사회로 옮겨간다. 

그때까지 불교의 중요한 종교적 재질이었던 개인의 정신적 지복을 대신하여 현세 이익의 비중이 커졌다. 밀교가 세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7세기 무렵 이후이다.

농촌을 중심으로 한 사회 속에서 불교는 새로운 시대의 상황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개인의 정신적 지복을 출가자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태도에서 제례와 같은 집단적 종교행위를 고려하였으며 나아가 토착적 숭배를 포함시키는 태도로 변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보수적인 승려들에 의해 억압 또는 배제되었던 피와 뼈, 생피의례도 그 전에 없던 강한 기세로 불교 탄트리즘 속으로 흡수되어 갔다.

이러한 경향은 4~5세기에는 인정을 받기 시작해 7~8세기에는 매우 두드러졌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 속에서 대승불교가 구제의 방법으로, 호마제 등 집단적 종교의례, 혈·골·가죽 등의 토착적 숭배, 샤머니즘의 신체기법(빙의, 탈혼 등) 등에 변질·순화를 더한 후 자신의 시스템에 편입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 어떤 것을 어떻게 변질·변화시켰는지 그 역사가 밀교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풍부한 의례문헌들의 생성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부응하여 많은 밀교의 의례가 행해지게 된다. 그런데 13세기 초 불교가 멸망한 인도에서는 현재 밀교의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전통은 티베트와 네팔, 그리고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하게 변용된다. 

인도의 밀교의례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의 원천은 당시 사람들이 남긴 의례문헌일 것이다.


인도 불교가 밀교적 색채를 띠기 시작한 것은 5, 6세기의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로부터 인도 땅에서 불교가 사라지는 수백 년 사이에 엄청난 수의 밀교 문헌이 나타났다. 의례의 해설을 주제로 하는 의궤로 불리는 문헌은 물론 경전이나 그 주석서 등에도 의례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많이 들어 있다.


인도의 종교적 문헌이나 철학서는, 주석서라고 하는 형태를 자주 취한다. 옛 시대에 신에 의해 계시된 말[슈루티, śrúti]을 성인들이 적어 놓은 후에 근본 경전이 된다. 

이에 대해 후세의 사람들은 주석서라는 형식으로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하거나 새로운 해석을 하기도 한다. 

주석서에 더 나아가서 주석을 추가한 복주, 게다가 주석을 더한 복주처럼 하나의 근본 경전에서 수많은 지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같은 일은 불교에도 일어났다. 불교의 경우 근본성전은 부처가 설파한 경전이다. 여기에 주석이 새겨지게 된다. 

불교의 경우 특정한 경전을 따지지 않고 철학적인 사변을 정리한 문헌도 많다. 용수의 「중론」이나 세친의 「구사론」 등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런 권위 있는 논서에도 주석서가 계속해서 쓰여진다.


밀교경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일경」 「금강정경」 「비밀집회 탄트라」 「삼바라 탄트라」 「시륜 탄트라」와 같은 중요한 밀교 경전에는, 모두 복수의 주석서가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는 근본 경전에 필적하는 중요성이 후세의 불교도들로부터 부여된 것도 있다.

주석자들은 경전의 내용을 굳게 지킨 것은 아니다. 거기로부터 독자적인 생각을 나타내는 일이 있다. 경전의 내용이 너무 간략해서 구체성이 결여된 경우도 있다. 그 때문에 주석서의 성립과 그 후의 전개는 자주 유파의 분열을 낳았다.

밀교에서는 의례의 내용을 해설한 ‘의궤’도 많이 저술되었다. 의례의 내용에 따라서 만다라의궤, 관정의궤, 호마의궤 등 다양한 것이 있다. 만다라에 대한 정보는 만다라의궤는 물론, 관정의궤와 같이 만다라를 필요로 하는 의례의궤에 포함된다.

원래 밀교의 근본경전이나 주석서에는 의례에 관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이러한 의궤와 내용이 겹쳐있다. 

그러나 같은 근본 경전이나 주석서로부터 만들어진 의궤일지라도, 거기에 쓰여져 있는 의례의 방법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것은 주석서의 전개와 같다. 

특정 경전에 의거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다른 만다라가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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