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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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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6-01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생활속의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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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법장원 연구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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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8 18:30 조회 2,1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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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밀교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주자”

우리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주는 어감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그 초점은 ‘미운 놈’’이라는데 있기 때문이다. 미운 놈에게 떡을 더 준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 인가. 당치 않는 소리이다. 그러니 비아냥 거리는 부정적인 말로 이해 될 수 밖에 … … 

그런데, 왜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줄까. 우리네 보편적 상식 과 심성으로는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주기는 커녕 줄 것도 주고 싶지 않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마 음 보따리이다. 좋은 사람에게 좋은 감정이 가는 법. 따라서 좋은 사람에게 떡 하나를 더 주게 되는 것 이지, 실제에 있어서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주기는 극히 어려운 법이다.

그렇디면, 이 속담은 실제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말장난에 불과 한 것이 이닌가? 그러나 그 속담에는 우리 선조들의 깊은 마음과 배 가 스며 있다. 미운 놈을 절대 좋은 감정으로 볼 수가 없고, 그다지 좋은 감정으로 대할 수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떡 하나를 주는 마음이 과연 일어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준다? 분명 쉬운 일은 이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자리를 곰곰히 생각 해보자. 그 마음이 보통 마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 미워서 떡 하나를 더 준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 마음 깊은 곳에 까지 미운 감정이 자리잡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음은 변화무쌍하여 좋고 싫음도 변하는 것. 그래서 사랑하는 남녀간에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미움은 더욱 심화되어 증오로 변하나 그 증오속에는 또다른 사랑이 새롭게 싹트고 있듯 이 미움은 영원한 미움이 아니요 언젠가는 더 큰 사랑으로 변할 수 있는 미움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주는 그 마음은 절대적인 미움이 아니다. 그 미움 속에는 영원한 미움이 아니라 사랑과 따뜻한 마음이 내재되어 있는 미움이며, 언제 가는 더 깊은 사랑과 따뜻함으로 변해갈 수 있는 미움인 것이다. 

단지 그 계기가 문제일 뿐. 때가 되면 꽃 을 피우듯이 시절인연이 되면 화해지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떡 하나를 줄 수 있는 마음은 양쪽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 하는 작은 마음의 불씨이다. 굳이 불교적으로 말하지면 ‘불성’ 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떡 하나를 더 받게 되는 ‘미운 놈’의 입장에서 한번 살펴보자. 범부중생은 견물생심이요, 물질적 욕탐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음식 끝에 마음 상하는 것’이 우리 중생이다. 더구나 나를 미워하는 상대가 나에게 떡 하나 더주기는 커녕 줄 것도 아예 주지 않을 때는 기분이 나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저 이가 나에게 떡 하나를 더 주었다? 이것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짐과 동시에, 괜히 저이가 좋아질 것 같고 적대감도 엷어질 것 같다.

하잘 것 없는 ‘떡 하나’에도 만생 만멸의 마음 작용이 일어난다. ‘떡 하나’는 일상에서 바로 ‘마음 한번 돌려 극락’을 얻는 마음공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매일 우리 진언행자들이 염송정진하는 것도 결국은 마음공부의 연장선이다. 오늘부터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주도록 하자”. ‘떡 하나’에도 부처님의 깨달음과 진리가 있지 않을까.

(법경 법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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