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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란(墨蘭)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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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3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4-01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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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8 05:20 조회 2,0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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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란(墨蘭)이 주는 교훈

김원각(시인)

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만해 불교문학상, 정운시 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고양시 문화상 수상



나의 거실에 한 폭의 난초 그림이 걸려 있다. 크기는 20호 가량이다. 화가의 이름은 우경이라 쓰여 있지만 그 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단지 국보급의 모조 도자기를 몇 개 사들일 때 덤으로 딸려온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싶었지만 집이 좁아서 그냥 광속에 넣어두고 지내다가 10여년이 지나 조금 큰 아파트로 이사를 온 뒤에야 비로소 제자리인 벽에다 걸어놓게 된 것 이다.

나는 그림을 보는 안목이 없기 때 문에 이 묵란의 가치는 전혀 모른다. 단지 광을 정리하다보니 이 그림이 나왔고, 대개 거실 벽면에 그림 한 폭은 걸어둔 집들을 많이 보았고, 거기에다 이 그림이 나한테 오기까지는 그래도 보이지 않는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하는 내 생각이 보태져서 결 국 벽에 걸어놓게 된 것이다.

대개 묵란의 구도가 그러하듯이 내 가 소유한 묵란도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허공을 향해 시원스레 뻗어 올 라간  잎줄기 중에 두 줄기가 중간쯤 에서 왼쪽으로 휘어졌다.

그 중에 한 줄기는 중간에서 휘어 져 나가다가 다시 한 번 꺾여져 전혀 예기치 못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더니 잎의 끝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처음에는 으레 한 두 줄기는 저렇 게 그리나 보다 하고 심상히 보아 오다가. 어느 날 나름대로의 개안을얻었다.

말하지면 우리의 “상식적이고 고정 적인 안목을" 파괴함으로써 이 그림 전체의 운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뒤늦게「파격」의 멋 에 눈을 뜬 것이다.

동양화에 있어서의 여백이란 멋의 사상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소유한 묵란은 많은 여백을 남기고 있다.

그 여백은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잎 줄기 하나가 깊숙히 휘어져 들어 감으로써 무한의 깊이를 지니며 향기 를 품고 있는 공간으로 출렁이는 것 이다. 한 폭의 그림은 무언의 시요,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는 말을 상기히면서 나는 이 묵란에서 선비 정신을 떠올린다.

청빈한 선비의 모습이 한 폭의 묵 란과 같다면 그가 거느리고 있는 정신의 공간은 바로 묵란의 여백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정신적이 공간을 지닌다. 그 공간이 넓고 깊을수록 멋과 인격의 향기는 멀리 번져난다. 그러나 물욕에 허덕이는 사람은 그 정신 의 공간은 좁아진다.

‘나는 물욕이 없으므로 가장 신에 가깝다’라고 한 그리스의 철 학자말도이런,뜻이리라. ….

물욕의 본질은 만족을 모르는 것이' 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의 충족을 위해 일생을 허덕인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많은 욕망은 괴로움을 낳고 그 괴 로움은 결국 스스로를 상하게 한다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두두물물 이 모두 부처라 한 선사의 법언에서 보지면 이 묵란은 나에게 부처임이 틀림없다.

‘그래, 박복한 이 중생이 이제 더 무엇을 바라겠나. 나도 저 묵란의 여백처럼 빈 마음 에 산을 세우고 절을 짓고 바람과 물 소리나 불러들이자’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묵란의 여백이 준 교훈 때문 이다. 

몇 년전 묵을 갈아 붓을 잡아보았다. 벽에 걸린 묵란을 그리기 위해서다. 그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화가는 영혼에 붓을 묻셔서 그린다는데 나는 붓 끝에 먹을 묻쳤으니 말이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다가 다음과 같은 시를 하나 얻었다.


붓 갈 데 안 갈 데 분별조차 못하면 서/마구 휘둘러 놓은 파지 직전의 그림 한 폭/내 마음 펼쳐 낸다면 아, 이런 형국아닐는지.

먹물에 싸인 여백들이 더욱 희게 보이는 순간/뼈 속에 와닿는 깨우침 하나 있다물 안든 나머지 마음, 그거나마 잘 닦으라는.


그렇다. 이제 늦게나마 마음을 잘‘ 닦아 향기를 지녀야겠다는 깨달음, 그것만으로도 청복이 아니겠는가. 법구경에도 ‘건강할 때 마음을 수행하지 않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고기 없는 못가의 늙은 백로 처럼 쓸쓸히,죽어갈 것이다’하였으니 참으로 두려운 말이다.

오늘도 내일도 한 폭의 묵란을 그리면서 여백의 충만을 배울 것이다.

능력껏 소유한 나의 재물에 만족하며 살고, 명예보다는 가치를, 부유함 보다는 넉넉하기를 기원하며 살아간 디면 늙은 백로처럼 쓸쓸히 죽어가지는 않으리라. 나는 이렇게 믿으며 벽에 걸린 묵란의 깊고 그윽한 여백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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