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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영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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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3-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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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7 18:43 조회 1,9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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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영화세상

좋은 영화이기 이전 독특한 영화, 영화는 검은 스크린에 3분 넘게 음악과 암전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의표를 찌르는 영화적 ‘전술’이 영상혁명가 라스 폰 트리에답다. 덴마크 출신인 트리에는 ‘ 유로파’ (91년)‘브레이킹 더 웨이브’ (96 년)등을 통해 새로운 영화 형식과 독특한 영상언어를 보여준 감독이며 우리 에게는 킹덤으로 더 잘알려져 있는 영상혁명가로 불린다.

주연인 뵤크 역시 섹시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전세계에 매니어 팬을 확보하고 있는 팝 가수. 열 한 살에 첫 음반을 낸 후 14집까지 선보였고 아이슬란드 대통령으로부터 귀족 칭호인 ‘레이디’를 선사 받은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댄서’에서 신들린 연기는 팬들 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

이처럼 천재성이 농후한 감독과 주연 배우는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이야기를 상상 속에서 펼치는 화려한 춤 과 노래, 인상적인 영상을 통해 스토리가 있는 한 편의 음악 영화를 만들어 냈다.

〈어둠속의 댄서〉는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지 않은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에 이민 온 체코 여성 셀마는 유전적인 병으로 시력을 잃어간다. 그녀는 그런 자신  아들 또한 시력을 잃을 것을 막기 위해 쉬지 않고 공장일에 몰두한다. 그녀가 갖고 있는 삶의 기쁨은 아마추어 뮤지컬 배우로서의 역할뿐이다. 우연히 그녀의 돈에 대해 알게 된 옆집 경찰관 빌은 그녀의 돈을 훔친다. 그 돈을 찾기 위해 빌을 찾아간 셀마는 그를 죽이게 되고 그녀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셀마는 유죄를 선고받고, 그 돈이 자신의 변호 비용에 쓰이는 것을 거부한 채 죽음을 선택한다.

여전히 전체적인 톤은 거칠고, 어둡고, 축축한, 그리고 슬픈 라스 폰 트리에 그 자신의 전통에 있어서 비껴나 있지 않다. 그 사이 사이에 뮤지컬,’장면’이 삽입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즉 조금 다른 이유로 늘라운 것은〈어둠속의 댄서〉가 뮤지컬의 컨벤셔널한 형식들에서는 벗어나 있으면서도, 뮤지컬이 지닌 전통적인 요건인 판타지로서의 기능에는 한치의 벗어남 없이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이다. 

오히려 라스 폰 트리에는 뮤지컬의 역사를 거슬러 올 라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 형식적 실험이지만 원래적인 의미는 더욱 더 심화되어 나타난다. 그는 이 판타지로서의 기능을 한 단계  더 밀고 나가 그것을 치유성의 의미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 영화에서 춤과 노래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만 시력을 잃어가는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쌜마를 위해 라스 폰 트리에가 마련한 치유적인 판타지의 시공간이다.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속에서 춤과 노래가 들어가는 시기는 그녀의 절망적인 현실 상황들 사이에 삽입되며, 그것을 통해 샐마는 희망적인 다른 상황을 잠시나마 꿈꾼다. 그러나 <어둠속의 댄서>에서 희망은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전제적 명제, 즉 피할 수 없는 ‘절망’ 안에서만 존재 가 능하다. 라스 폰 트리에에게 절망은 판도라의 상자 안에서 희망보다 더 밑바닥 에 있는 삶의 진리이고, 시력을 잃은 셀 마에게 빛의 존재와도 같은 춤과 노래는 그녀의 눈을 가리는 ‘어둠’이 있어야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것이 된다. 그래서 〈어둠속의 댄서〉가 새롭다면 그것은 형 식의 실험 때문이기보다는 끝없이 절망 함으로서 다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라시 폰 트리에의 영화에 뮤지컬의 치유적 판타지가 시도 되었다는 태도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절망의 심연에 이르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절망의 밑바닥에 도달하여 구원받는 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물을 던지고 있다. 절말은 인물들의 '비정상성'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비정상성은 곧 인물들이 겪는 '장애'로 드러난다. <어둠속의 댄서>에서 샐마의 노래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셀마가 사형 당하는 마지막 장면,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차라리 기도에 가깝다. 따라서〈어둠속의 댄서〉는 여전히 라스 폰 트리에의 절망으로서의 구원이라는 사유 안에 있으며〈브레이킹 더 웨이브〉와〈백치들〉의 상호적인 이해 관계속에 놓여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진흙 속 절망의 노래가 만들어낸 뮤지컬이〈어둠속의 댄서〉인 것이다.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마도 라스 폰 트 리에가 뮤지컬을 만나게 된 것은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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