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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3.1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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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3-01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사설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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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7 17:24 조회 2,0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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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3.1 운동

1910년 이후 한국은 일본의 조선총독부통치하에 놓여 있었는데,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한민족의 항일독립투 쟁은 각지에 의병을 낳고 널리 민족계몽운동으로 발전하 여 갔다. 일본은 이와 같은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하여 항일독립운동 투사들을 학살· 투옥하고, 일체의 결사와 언론활동을 금지하였다.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우민정책을 실시하여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고, 고도의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박탈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폭압은 지식인· 학생·  종교인뿐만 아니라, 농민 ·  노동자에 이 기까지 모든 국민의 반일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이 일본의 무단정치를 겪고 있을 무렵, 1914년에 일어난 제1 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고, 1918년 1월 미국대통령 윌슨은 14개조로 된 전후처리원칙을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한다’고 하는, 민족자결의 원칙을 제창하였다. 이것은 세계의 피압박민족에 대한 자극제가 되었다. 이 민족자결주의의 새로운 원칙은 항일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던 독립 운동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의 태화관은 긴장과 신념과 의지가 함께 교차하는 가운데 민족대표 33명 중 29명이 예약한 방에 모였다. 오후 3시 손병희의 제의로 한용운이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짐하는 간략한 인사에 이어 그의 선창으로 만세 3창을 고창 하였으며, 불과 15분만에 전 격적으로 낭독식을 끝내고 통고한 대로 경찰이 오자 스스루 체 포되어 갔다. 파고다공원 후문으로 나선 학생과 민중들은 창덕궁 · 안국동 · 광화문 앞에서 서대문을 경유, 프랑스영사관에서 독립만세를 고창 한 뒤 다사 이화학당·  정동·  미국영사관 ·  대한문 앞으로 해서 충무로를 거쳐 동대문 방향으로 가서 그 문 위에서 독립만세를 절규하여 전국적으로 확대 파급되었다.

3 -1운동 이후 3개월 간의 전국 독립만세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집회 횟수는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 3089명,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체포된 인원수 4만 6948명이며 소각 당한 교회당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나 되었다. 이때 서 울의 10개교에서 여학생이 참가한 인원은 1,929명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통계는 이 운동이 어떤 지도력에 의하여 인도 되었다기보다는 전 국민이 계층별· 남녀별·  지역별·  학력별 · 연령별 할 것 없이 전부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시민혁명적 의식성장의 면에서 3· 1운동은 곧 시민국가 성립운동의 성격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3.1운동이라 칭하며 삼일절은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공무원, 학생, 직장인 등은 그 날 하루는 업무를 놓고 쉰다. 삼일절의 의의나 역사적인 위치 등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국사시험 때문에나 기억할 뿐 학교를 졸업하면 오로지 공휴일로 만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관공서나 기관에셔는 삼일절 관련 현수막 몇 개 붙이는 것으로 자신들의 임무는 다한 것처럼 하고 방송언론운 삼일절 특집으로 독립군들의 활약상이 나오는, 대사 조차도 신파 같은 오래 묵은 영화 몇 편 방송으로 넘어가고 일간지에는 삼일절 행사에 높으신 분이 참석했다는 짤막한 보도기사 한 줄로서 스스로에게 만족한다. 아무리 역사는 과거이며 과거는 잊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들 중에서 과거의 유물이나 혹은 문화재 그리고 자연환경, 경제적인부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에서도 삼일절 같은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이나 의미 그리고 그 시대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아픔과 절망 그리고 그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 주고 물려주고자 한 생각과 사고 그 뜻을 받아 다시 우리들의 후손에게 가르치고 물려주는 것 또한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을 보존하여 물려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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