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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석류가 열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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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3-01 신문면수 1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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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이재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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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7 17:21 조회 2,0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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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석류가 열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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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하철 구내를 지나다가 ’풍경소리’라는 포스터에 실린 이런 제목의 글을 본분이 있을 것이다. 포스터인 만큼 아주 짧게 줄이고 누르고 빼서 원고지 두매 정도로 쓴 것 인데, 원래 내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집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데, 처음 집을 지을 때 뭘 모르고 석류를 심었다. 고향인 충청도에서 흔히 보던 걸 기억하고는 용인에서도 잘 자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용인은 석류가 열리지 않는 지역에 속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흙을 파서 묻어주거나 온통 짚으로 싸주어야만 했다. 그래도 열매를 구경할 수가 전혀 없고, 대신 탐스런 꽃이 오뉴월 무렵 한달 내내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누가 석류나무더러 열매를 맺지 말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온도가 따뜻하지 못함을 느낀이 석류가 스스로자기 조절을 하는 모양이었다.

따뜻한 지방에서 살아야 할 석류나무를 그렇지 않은 마당 한 켠에 심어놓고 보니, 이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키가 크지도 못하고, 이파리나 가지가 실하게 자라지도 못했다. 석류가 원하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석류의 본래면목을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 . 그래서 나는 우리집 석류나무에 영원히 석류가 열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 전 여름이 아주 뜨겁던 해, 석류가 세 개나 열렸다. 그것도 아주 탐스럽 게 쩍 벌어진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네가 아주 바보는 아니었구나. 너는 온도만 충분하면 언제든지 석류를 맺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구나.

나는 우리집 석류나무에 대한 선입견을 털어버리고, 그 나무 속에 숨어 있던 찬란한 석류열매를 똑똑히 보았다. 그러고 나니 석류를 열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제야 터득 이 되었다.

석류가 열린 것은 알고 보면 간단한 이치였다. 그해 여름의 그 뜨거운 태양빛 때문에 평균 온도가 상승하여 석류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석류 하 나도, 자연의 변화에 이렇게 능동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것이다.

인체를 가리켜 작은 우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워낙에 동양 의학에서는 정설처럼 하는 말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 말이 당연한 것도 저 세포 분열 당시부터 보자면, 무게는 나오지도 않고 모양조차 현미경으로나 겨우 보일 작은 생명이 70여 킬로그램 안팎까지 성장한 성인 남녀의 경우 그 많은 몸무게가 어디서 왔겠는가. 모두가 제 주변 에서 취한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이러한 데서 동양 의학의 관점이 생겨난 것 같고, 그래서 흔히들 자연에 맞추어 순응하여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들 하는가 보다.

그렇지만 이 말을 내가 직접 체험하기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도대체 날씨가 궂은 것하고 할머니 관절 쑤시는 것하고 무슨 상관인지, 왜 어머니는 초저녁에 주무시고 새벽같이 일어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혈기 왕성한 젊은 육체로는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한창 신진대사가 활발한 때에는 낮밤이 없을 정도 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40대 중반에 들어서고 보니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들이 괜한 것이 아니고, 또 인가 곧 자연이라는 말이 고상한 현학자들의 은유법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시골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12년이 되어가는데, 정말로 해가 뜨면 눈이 떠지고 해가 지면 졸리다. 함께 사는 닭이 그러하고, 개가 그러하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내가 한두 살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체험되는 현상인 것같다.

인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앞서 말한 석류와 다를 바가 없다. 여성이 첫 월경을 하는 것도 체내에 축적된 지방의 양에 따라 시기가 조절되고, 태어나는 아이의 남녀 성별이 결정되는 것도 여성의 질내 산성도 따위에 영향을 받는다는 등 인간의 이성이 아닌 자연의 변화에 좌지우지되는 일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석류는 참으로 많은 교훈을 주었다. 이제는 석류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을 바라보아야 할 차례다. 혹시 온도가 약간 모자라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 이 있거나, 또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가 찾아볼 일이다. 특히 당신의 냉랭하고 쌀쌀함 때문에 그렇다면 어쩌겠는가. 불성은 누구한테나 있다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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