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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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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호 발행인 총지화 발간일 2000-1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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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서동석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불교총지종 사회복지재단 사무국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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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6 18:21 조회 2,0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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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속으로

11월 25일 토요일 오후 4시. 종보원고 최후마감 시간이다. 나는 사무실에 나와 앉아 있다. 절기상으로는 엄연히 겨울이다. 하지만 거리에는 아직 늦가을의 정취가 배어있 다. 헐벗은 가로수가 즐비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양지바른 곳에서 풍부한 햇살을 받고 있는 나무들에게는 아직 고스란이 가을이 남아있다. 이 도시에 흘러드는 스산한 세 상소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아직 남아있는 생명력에서 위안을 받아보려고 한다. 햇살이 사무실 앞마당을 고즈넉 하게 만든다.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늙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이도 아닌 중간에 들어 뭘 하긴 해야되는데 딱히 뭘 하기도 어려운, 어 중간한 나이다. 하루로 치면 오후 4시쯤이라고나 할까.

지난 천년대를 보내고 새천년을 맞을 때 나는 우리 가족과 ‘천년의 여행’을 떠났다. 서해안 만리포에서 천년대의 석양을 보며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했다. 그리고 동쪽 으로 내달려 영덕의 해안가에서 새천년의 새벽을 맞았다. 비록 잔뜩 흐리고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져 장엄한 일출은 보지 못했으나 나와 우리 가족은 새기운을 얻었다. 지난 밤 긴긴 시간을 운전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했고 이제 저 먼 곳에서 하염없이 밀려오는 파도의 흰거품과 함 께 묻어오는 신새벽의 공기로 나를 새롭게 다지고자 했다.

나는 무엇인가? 불교적으로 보면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요소가 조합된 몸에 인식이 작용하는 ‘물건’일터이지만 단순한 조합을 넘어 생동하는 인격체로서 나는 무엇 인가 말이다. 되묻고 되묻는 스스로의 질문을 통해 인간 평균수명의 반을 후딱 넘어선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하여 내 부모가 살아온 이상으로 가치있는 삶을 살지 못한 나 를 책망하였다. 그 책망 위로 이제 앞으로 십 여년 밖에 남지 않은 활동력의 부담은 엄청난 무게로 작용하였다. 허전함과 동시에 위기감을 떨칠 수 없다.

외관상 아직도 나는 한창인 것 같다. 내 또래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흰머리도 없어 다행히 젊어 보인다. 하지 만 속으로는 허물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느낀다. 내 또래 보다 속은 더 형편없는지 모른다. 몸의 곳곳에서 노후화 의 조짐은 역력하다. 의식과 몸의 갈등이랄까. 사회과학 적인 표현을 빌리면 ‘모순의 심화’ 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 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고픈 바람과 이미 절정을 넘어선 몸의 기능간에 다만 욕심이 앞서는 것일게다. 결국에는 다시 올 새봄에 푸른 잎을 돋우기 위해 자신의 뿌리로 돌 한 아가는 낙엽과 같아야 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늘 잊고 산다. 인생의 문은 점점 닫히고 있는데'…

나는 지금 사무실 책상에 앉아 또다시 반성을 한다. 그 신새벽의 바닷가 차디찬 공기 속에서 다짐했던 서원을 실 천하지 못한 나를 책망한다. 성찰이 한해도 지켜내지 못 했으니 이 또한 무슨 몰골인가. 무엇보다 나는 이웃에게 저 마당에 내리는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과 같은 존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가을걷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늦가 을의 비가 된 것은 아닐까. 사람이 이 나이쯤 되면 넉넉한 인품의 그늘을 만들어야 할 터인데 그러기는 커녕 나로 인해 가슴아픈 사람이 있게 하였다. 천성이 느려터진 탓 에 나를 아끼는 어른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기 일쑤다. 그 분들의 넉넉한 보살핌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나의 행실을 고치지 못한다. 뿐인가. 세심한 배려를 하지 못해 나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게 만든 후배도 있다. 그들 후배 가운데 어느 후배는 나의 잘못이 얼마나 컸는지 그 후배로 하여금 내게 절연의 긴 장도를 들이대게 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 그가 내게 다시 예전의 따스함을 보여주 려나. 못난 선배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바깥에서만이 아니다. 가족들에게도 애비로서, 가장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어른으로서, 남편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공연히 말만 번드르 했 고 엉뚱하게 다그치기도 했다. 일상에서의 규범을 지키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그 옛날 내가 어른들 에게서 뱉었던 위선에 대한 모멸을 느끼고 있을게다. 서 산대사께서는 말로 세상을 화려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변소를 단청하랴’라고『선가구감」을 통해 일갈하였다. 내가 꼭 그 짝이다. 스스로의 교정 없이는 다짐이 무슨 소용이랴.

맞을지 모르겠는데, 하이네의 싯구가 떠오른다. ‘가슴에 서려있는 겨울’을 걷어내야 한다. 점점 내 가슴의 공간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이 거드름의 냉랭함을 떨쳐내야 한다. 겨울을 거울삼아 나를 돌아봐야 한다. 한 알이 라도 더 걷기 위해 쓰러진 벼이삭을 짚으로 묶어 세우듯 바른 나를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는 세월이 고양이 발걸 음처럼 소리없이 다가왔다. 이제는 코끼리의 걸음소리로 다가온다. 인생의 겨울을 수순할 수 있을 정도의 인품을 앞으로 남은 시간에 만들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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