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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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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5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5-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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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선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총무국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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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2 06:49 조회 1,3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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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즈음에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입이나 책을 통해 수없이 들어 왔지만 십대와 이십대 때에는 그 의미를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 말 중에 하나가 “삶이 유수와 같다”는 말일 것이다. 그 시기에는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과 기대에 부풀어 있어서 간단 없이 흐르는 삶이라는 강물의 속도와 깊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 나이 사십이 가까워지고 그간의 경험 속에서 인간의 몸으로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때쯤, 앞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이 “삶이 유수와 같다”는 한 마디 말속에 농축시켜 놓은 깊은 맛에 비로소 감성적인 동화작용을 일 으키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심리적 동화과정은 나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려니와 주변의 친구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통해 볼 때, 마치 우리의 육체가 유아기와 성장기를 통해 이십대 중반에 완전히 성숙되듯이 나이 마흔쯤이 사람에게는 심리적 성숙기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삶이 유수와 같다”는 말의 의미를 실존적으로 자각한다는 사건은 단지 술 한잔에 인생의 고달픔을 풀어보내는 푸 념이상의 것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 동안 살아 온 과정에 비추어 앞으로 살아갈 모습들이 미루어 짐작되는 이 시점은 단지 품었던 욕망의 뿌둣한 성취감과 좌절로 인한 상실감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삶에 대한 나름대 로의 깊은 통찰이 있다.

어린 시절 어느 땐가 우주를 인식하면서 존재의 경이로움에 눈을 뜨 고, 우정과 사랑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가슴 설레던 사춘기를 지나, 지적호기심과 정의감으로 가득했던 이십대, 그리고 바램과 현실의 불일치 사이에서 적응 과정을 겪어야만 했던 삼십대를 보내고 이제 삶의 끝자락을 예감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찾아든 이 심리적 자각증생에는 삶에 대한 균형 잡힌 가치평가라고 할 만한 다른 차원의 무게감이 있다. 가령, 이룰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 주구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여 나름대로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아도 겪어야 했던 사춘기처럼 인간의 몸으로 삶의 과정을 버텨온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으로서 삶의 본질에 한 발 다가서도록 차분하면서도 소박한 통찰 지가 각 주체들에게 스스로 피어나는 존재의 자기확인 과정일 수도 있 다.

물론, 자연물로서의 꽃들이 저마다 생김새와 향이 다르듯이 각자 살아 온 지향점과 진지성에 따라 그 지혜의 색과 향이 다를 것이긴 하지만 느슨한 의미의 보편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인생 사십에 이르러서야 더 이상 세상일에 갈팡질팡하게 되지 않았다’고 하신 공자의 솔직한 말이 지금 나에게 깊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한동안 놓아두었던 불교철학책들을 다시 읽기 시 작했다. 그리고 불자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려하  있다

말 그대로 종교란 한 인간이 가지는 가장 깊은 차원의 가치체계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 가치 체계는 그 자체로 절대적이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려고 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불교라는 믿음체계를 통해 무엇을 이루어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게된 심리적 발화기에 당연히 성찰해 보아야 할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김선미/인드라망생명공동체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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