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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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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3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4-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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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3 17:38 조회 1,5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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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 호박덩쿨

담위에 가을볕이 환하다.

 누런 호박 두 덩이가 묵직하게 매달려 있다.

의젓하다.

“저놈들을 저리 기르느라

호박덩쿨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호박덩쿨은 가늘지만 억세다.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대학 공부시키던

시골 농부의 손처럼 억세다.

맺힌 호박 알이 중간에 시들까 봐

애는 또 얼마나 태웠을까?

억센 손, 새카맣게 탄 속.


의젓한 호박들이여,

오늘 퇴근 때는 부모님 자실 술 한병,

 고기 한 근 사가지고 들어가게나. 

모시고 사는 것 괴롭게 생각지 말게. 

사가지고 들어가 봐야 소용없는 사람도 있다네.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정진권 (한국체대 명예교수)




- 아무것로 감추고 있지 않네

송나라의 황산곡 시인은 참선을 마친 뒤

옆에 계신 조심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논어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다네 했는데

그 말씀이 바로 선과 같지요?“

 “잘 모르겠는데요. 우리 산책이나 할까요?”

두 사람은 물푸레꽃이 활짝 피어있는 산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향기가 어떻습니까? 좋지요?”

선사가 물었습니다.

“예 좋군요.”

 “거 보시오.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지요?’’

 맹난자(수필가)’



- 통자 인생

통 속 같은 아파트에서 자고

통 속 같은 엘리베이터를 통해

통 속 같은 지하철을 타고

통 속 같은 사무실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마침내 통 속 같은 관속에 들어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의궤적입니다.

통 속 같은 세상에서 살다 보니

어느새 생각조차 통조림이 된 듯합니다.


이제 관념의 뚜껑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봅시다. 

우주에는 칸막이가 없고, 

구름의 길에는 가드레일이 없습니다.

정용철(시인)




-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흐른다

물은 합치려는 의지로 흐른다.

돌부리에서, 가링잎 틈새에서 스며나온 물은 

흐르다가 비켜서 만나고 둑을 쌓아 막으면

틈새로 새어나와 다시 만난다.

그렇게 만나고 합쳐서 강이 되어 흐르고 

강물은 다시 합쳐 바다에서 하나로 된다.


물소리는 서로가 그리워서 울부짖는 외침이다. 

그리움 끝에 만난 물줄기인지라 포구에 다 와서는 

웃음 짓는 만월을 띄우고 흐른다.

물의 여정은 하나로 되어 가는 과정이다.

나뭇가자는 자라면서 갈라지지만 물은 갈수록 합쳐진다.

하나가 되려고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류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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