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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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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3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4-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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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양동효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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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5 09:34 조회 1,9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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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 짐에 대하여

생 텍쥐베리의〈어린 왕자〉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무슨 말이니?”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던 일이야. 그것은 ‘관계를 맺는다’는뜻이란다.”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물론이지. 내게 있어서 너는 아직 몇 천, 몇 만 명의 어린아이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리고 나는 네가 필요 없고 너는 내가 아쉽지도 않아. 그러니 네게는 나라는 것이 몇 천, 몇 만 마리와 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지.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나에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 가 될 것이고 또한 네게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거야......"

얼마 전부터 서예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깨 너머로만 배우고 내 나름대로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했는데 제대로 한 번 배워볼 양으로 붓을 잡았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며 마음에 새기기는 하지만 붓을 잡는 법부터 글씨를 쓰는 법까지 자꾸만 이전의 버릇이 나오곤 합니다.

버릇이 된다는 것, 그것은 길들여진다는 것이고, 익숙해 진다는 것이고,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고, 굳어져 관성이 붙었다는 것일 겁니다.

소위 골초라고 하는 사람들은 담배 없이는 살아가는 의욕이 없다고 하고, 김치에 익숙한 사람은 반찬 중에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 않고, 수다쟁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입이 근질근질하고, 활동적으로 일하던 사람은 가만히 있으라 하면 좀이 쑤셔 안절부절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행위가 반복되다 보니 훈습이 된 것일겝니다. 

원래 ‘나’란 없으니까 ‘나의 것’ , ‘나의 버릇’도 없었겠죠. 그러나 점점 ‘나’라는 의식을 형성해 가고, ‘나의 것’ 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나의 버릇’도 ‘나’라는, ‘나의 것’이라는 범주 안으로 들게 되고 그것을 배제하고서는 ‘나’ 를 생각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 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행운일 수도, 또 엄청난 재앙일 수도 있 습니다. 좋은 것, 바람직한 것에 길들여지는 것은 마치 향 싼 종이에서 향내가 나는 것과 같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복 을 부르는 행위를 하게 됩 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 나쁜 행위에 길들 여진다면 고기를 쌌던 종 이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아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화를 부르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죽음과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벗들과 사귀면서 선업을 쌓는 일에 힘쓸 일입니다.

조그마한 선이라 하여 가벼이 여기지 말고, 조그마한 악이라 하여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미소가 한 사회를 밝게 만들고, 조그마한 불씨가 온 산을 태우고 맙니다.

지금 우리들의 행위 하나 하나가 복을 부르는 일로, 혹 은 화를 부르는 일로 자각도 없이 길들여져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무심코 짓는 행위에 나를 태우는 작은 불씨와 같은 것이 없었나 돌아볼 일입니다

〈양동효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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