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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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5-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시인 김정수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9:07 조회 5,456회본문
세 번째 시집을 내고 선생님을 뵈러 춘천에 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주말임에도 춘천행 열차는 텅 비어 있었지만, 열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도착한 역에선 열화상 카메라로 발열 체크를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춘천에 사는 시인이 마중을 나왔다. 식당에 들어서자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저녁 식사가 끝나갈 즈음 선생님이 아침못에 가자 하셨다. 춘천에 자주 왔다 갔지만 아침못은 처음 들어봤다. 아침못 부근에 사는 시인이 저녁노을이 질 무렵 풍경이 근사하다고 맞장구를쳤다.
늦은 벚꽃 길을 달려 도착한 아침못은 차가운 산빛을 담은 채 고요했다. 높은 산과 낮은 들을 막아 물을 안은아침못은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저수지였다. 조금은 실망한 난 일행보다 앞서 곧게 뻗은 둑길을 걸어갔다. 전방 산기슭으로 길게 철책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침못 둘레길인 줄 알았는데, 뒤따라 온 시인이 군부대라 했다. 못 건너편에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시인이 말했다.
“저기 보이는 게 과수원인데, 여기서 보면 길이 없지만, 오른쪽으로 길이나 있어요. 저 집을 사려 알아봤는데, 집 근처에 물이 흘러 주거로는 적당하지 않더라고요.”
잔잔한 물속에 산과 나무와 하늘의 구름이 거꾸로 박혀 허우적거렸다. 잔물결이 일 때마다 사라졌다 나타나곤했다. 길은 철책으로 막혀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철책 뒤에는 군 초소가 솟대처럼 서 있었다. 산빛 그늘진 곳에서 청둥오리가 날아올랐다. 산과 나무가 출렁거렸다. 활강을 마친 청둥오리가 다시 못 위로 미끄러졌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나비 한 마리가 내 바로 앞 풀꽃에 날아와 앉았다.
나비를 보자 문득 3년 전 여름, 베트남 여행이 떠올랐다. 하노이 부근 나룻배 체험 코스였는데, 무척 습하고 무더운 날씨였다. 아내와 둘이 삼판이라는 나룻배를 탔다. 부채를 부쳐도 땀이 줄줄 흘렀다. 뱃사공이 모자 대용으로 쓰라며 연잎을 타서 내밀었다. 연잎 그늘이 지니 좀 나았다. 깊지 않은 수로에 물풀 사이를 유영하는 물고기가 꽤 많이 보였다.
드디어 반환점, 배가 동굴로 들어갔다. 그늘에 드니 그나마 좀 시원했다. 그때 내 눈에 수풀 위 나비 떼가 들어왔다. 난 신기한 풍경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곳에 무엇이 있길래’였다. 아마도 먹을 것이나, 아니면 알을 낳기 위함일 것 같았다. 강렬한 햇빛에 팔랑거리는 날갯짓, 눈이 부셨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겠지만, 마치 내가 나비들과 수풀위에서 팔랑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어느새 그곳에서 나비가 되어 날개를 파닥거렸다. 날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호기심을 펼쳤다. 그것이 무언지 확인하려는 순간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뭘 그리 뚫어지게 봐?” 아내였다. 미몽에서 깨어나듯 주위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응. 저 나비 떼.” 현실로 돌아오긴 했지만 멍했다. 꿈을 꾼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서 나룻배들이 떠나고 있었다. 아주 잠깐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장주의 호접몽 같은 경험을 했다.
여행 내내 그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난 휴대전화 카톡에 메모했다. “나비 떼가 켜켜이 날고 있다/ 팔랑거리는 수면을/ 숨죽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생이 간다” 여행이 끝난지 3년이 가까워지지만 난 아직도 이시를 완성하지 못했다.
어느새 해가 기울었다. 아침못 위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붉은 해를 배경으로 둑에 서 있는 일행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산속에 숨어있던 안개가 못 위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건너편 과수원의 불빛이 잔물결로 파닥인다면 참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갔는지 나비는 보이지 않고, 풍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시인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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