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중무진과 상의상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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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4-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칼럼리스트 김태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3:35 조회 5,731회본문
모든 존재는 유기적으로 연결 불교,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된 미래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의 전파는 단기간에 전 세계에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WHO에 의해 판데믹(pandemic)이 선언되었습니다. pan은 모두(all)를 뜻하고 demic은 사람을 뜻하는 demos에서 나왔습니다. pantheon은 pan과 신(theos)가 결합된 말이지요. 흔히 만신전으로 번역됩니다. demos는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에 나타나있습니다. 일반 민중 demos에 의한 지배cracy를 의미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물리학의 나비효과를 연상하게 합니다. 런던의 한 나비의 날개 짓이 일으킨 미풍이 연쇄적인 작용을 일으켜 아마존강의 폭풍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도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불교의 연기론이나 인드라망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불교는 인도 신화의 신인 인드라에 의해 드리워진 그물인 인드라망을 모든 존재의 모습을 나타내는 비유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그물의 그물코마다 존재를 상징하는 투명한 구슬이 달려 있는데,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의 모습을 비추고 그 구슬은 동시에 다른 모든 구슬에 비춥니다. 그러한 모습을 화엄종의 현수 법장은 이를 두 개의 거울을 마주하여 서로 비추는 모습으로 설법하기도 하였지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중중무진’의 관계로 이어져있음을, 의상대사는 법성게에서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렇듯 불교의 세계관은 초월적 유일신을 상정하고 그 신의 창조에 의해 이 세계가 이루어졌다는 주장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마 유일신교와 불교가 교리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을 의미하는 www는 world wide web의 약자로 web은 방사형으로 펼쳐진 거미줄을 의미하는데 인드라망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적 세계관은 현대사회에 매우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상의상존하는 모습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다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각국이 전염병을 막기 위해 국경을 차단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외형상 고립되었다고 하여도 실질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은 모든 존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현상을 밝혀냈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지를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그 부분은 아마도 종교의 영역일 터인데 유일신교는 이러한 연기론적 세계관을 결여하고 있기에 현대사회에 적절한 교리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교는 현대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가장 적절한 답을 이미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사회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구성의 원리의 하나로 반드시 불교적인 내용이 담겨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불교는 서로 주장하는 세계관이 매우 비슷하지만,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쳤다면 불교는 그 기반위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와 그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치료 방법이 저절로 마련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지할 수는 있습니다. 모든 종교 중에서 그 창시자가 분명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종교는 불교입니다. 석가모니는 적어도 기원전 6세기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베르나르 호지의 말을 빌린다면 불교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된 미래입니다. 미래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2,500여 년전에 이미 붓다 석가모니가 말씀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칼럼리스트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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