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성취자전」에 출현한 인물들은 나란다사 승원대학 출신인 경우가 많다. 나란다사는 삼장을 구족한 도서관이 있으며 석가모니 붓다 이후 테라와다와 대승, 현밀의 전통을 고루 보존해왔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란다사에서 학문과 수행을 이루었지만 진정한 성취의 관점에서 보면 출가와 재가의 경계도 세속제 인간사의 일일 뿐이다. 유명한 틸로빠나 나로빠도 학장으로서 설법으로서 세간의 존경을 받았지만 내면적 진실을 마주할 때 의심이 다 하지 않았고 결국 가사와 발우를 내려놓고 시장과 화장터, 강가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석가모니 붓다가 건립한 출가승단은 수행자로 하여금 번뇌 종자를 발현케 할 외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였는지 모른다. 이름을 전하지 않는 많은 선사들도 오도(悟道)를 감추고 아뢰야식 저변의 미세번뇌를 털어내는 자기완성의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84성취자전」의 성취자들은 승의세속 양제를 넘어 출가 재가의 경계에서 자유로웠는데 돔비빠도 그 가운데 속한다. 

돔비빠는 중인도 마가다 출신의 왕족이었다. 그는 일찍이 위루빠를 만나 헤와즈라딴뜨라의 구전을 얻어 성취를 이루었다. 돔비빠는 왕위를 계승했지만 승상을 비롯한 측근과 백성들은 돔비빠가 성취한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왕은 승상에게 말하길, “이 나라의 백성들은 고통받고 있다. 도둑과 강도들이 재산을 약탈하고 사람들은 공덕을 쌓지 않아 가난과 배고픔이 창궐하고 있다. 나라를 공포와 가난으로부터 물리치기 위해 나무에 큰 종을 달도록 하라. 만약 누군가 범죄나 가난을 본다면 그로 하여금 종을 치도록 하라”라고 명령하였다. 승상은 말대로 따랐고 이윽고 마가다에는 공포와 가난이 사라지게 되었다. 어느 날은 천민계급의 악단이 도시에 들어와 왕을 위해 노래와 춤을 공연하였다. 돔비빠는 공연자 가운데 자신의 배우자로서 인연 있는 처녀를 알아보고 청혼할 것을 악단의 단장에게 요청하였다. 리더는 자신이 천족인 것을 들어 거부하였으나 왕은 상응하는 재물을 주고 혼인을 강요하였다. 돔비빠는 12년간 수행하였고 이윽고 사람들은 왕비가 명비로서 수행자의 짝인 것을 알게 되었다. 돔비빠는 왕위를 아들에게 양도하고 명비와 숲에 몸을 숨기고 다시 12년간 수행하여 큰 성취에 이르게 되었다. 

돔비빠가 왕위를 양위한 후 마가다는 국세가 점차 기울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었다. 백성들은 다시 모여들어 옛왕인 돔비빠로 하여금 다시 나라를 일으키길 요청하여 사절을 보내게 되었다. 이때 왕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는데 명비는 물을 길으러 갈 때 연못의 연잎을 밟아도 물에 빠지지 않았고 15척의 깊이의 정수를 떠서 왕에게 바쳤다. 사절은 크게 놀랐고 이를 왕실에 보고하였다. 다시 사절을 보내 왕과 명비는 숲으로부터 나오게 되었는데 그들은 호랑이를 타고 독사를 채찍으로 삼았다. 

왕실과 백성들은 왕으로 하여금 다시 나라를 맡아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돔비빠는 “지금은 나도 천족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신분과 상관없이 통치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답하면서 자신과 명비를 불에 태울 것을 요구하였다. 사람들은 전단향목을 모아 돔비빠와 명비를 태우게 되었는데 그 불길은 무려 일주일간 그치지 않았다. 이때 백성들은 헤와즈라와 금강녀로 화한 두 사람의 환신을 보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마가다국의 왕실과 백성들은 불교에 신심을 갖게 되고 돔비빠와 명비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때부터 돔비빠는, ‘천족의 돔비빠’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왕실과 백성들은 다시 나라를 다스려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돔비빠는 “내가 그대들을 다스리려면 그대들도 내가 했던 것처럼 몸을 불살라야 한다. 이 세상은 공덕은 적고 고통은 많은 곳이다. 나는 대신 법의 왕이 되어 그대들을 가르칠 것이다”라고 답하고, 다까(지금강과 지금강녀)가 있는 정토의 세계로 갔다고 「84성취자전」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