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알아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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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5-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칼럼리스트 김태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6:30 조회 5,308회본문
오리엔탈리즘, 식민 지배 정당화를 위해 작용 서로 다름을 알아야 전 지구적인 연대가 가능
오리엔탈리즘은 ‘해가 뜨는 곳’을 뜻하는 라틴어의 오리엔스(Oriens)에서 기원하는데, 처음에는 지중해의 동쪽인 그리스 지방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이것이 근대이후 유럽인들의 팽창에 따른 지리적 지식의 확장으로 오늘날 중국 일본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로 변화하였습니다. 오리엔트와 달리 아시아(asia)란 이름은 그리스 문명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그리스의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 ‘아수(asu:동쪽)’에서 비롯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 지방을 포함한 메포소타미아 지역을 가리켰다가 오늘날에는 더 동쪽인 일본까지 포함하는 지역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리엔트의 번역어인 동양이란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하였을까요?
동양과 서양의 구별은 송나라 말에서 원나라 초(13세기)에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지리적으로는 광저우와 수마트라 동부를 연결하는 선의 동쪽 바다를 동남해라 했다가, 원나라 때 동양이라고 불렀다고 되어있습니다. 바다를 경계로 양의 동서로 구분한 것이죠. 이것이 명나라 때 중국에 건너온 유럽 선교사들이 세계지도를 만들면서 세분화되었는데 태평양의 북부를 나눠 바다의 서쪽을 대동양, 동쪽을 소동양이라고 하고, 인도양을 나눠 서쪽을 소서양이라하고, 그보다 더 서쪽의 바다를 대서양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1978년 간행된 책의 이름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서양인들에 의해 규정된 동양에 대한 정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서양이 동양을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인식틀인 오리엔탈리즘은 그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는데,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도덕적으로 타락되었고 이상하고, 서양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하고 정상이라는 식의 틀을 세워 개화의 명분으로 동양의 침략을 미화하였습니다. 여기에 동양인 사신들에 의해 재생산되어 자신들을 비하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적 논리로 작동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논쟁중인 식민사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인식틀이 그동안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되어 왔지만 동양이 서양을 뛰어넘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19에 대한 대처에서 한국과 소위 선진국이라 불렸던 일본을 포함한 나라들의 대처와 비교하면서 한국인들도 놀랐던 것이죠. 한국은 자신들의 역량이 이정도로 성숙했음을 모르고 있었다가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하면서도 스스로도 잘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이제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하나 둘씩 설명될 것입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오리엔트나 아시아라는 명칭은 너무 넓고 이질적인 지역을 하나로 묶어놓았습니다. 중동 지방의 아랍인이 나 이란인들은 동아시아의 우리와 가까운 것이 아니라 유럽인과 같은 코카서스 인종에 속합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지방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하나의 문명권으로 묶여 있다가 서양의 중세가 시작되면서 기독교권과 이슬람교권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이해가 있어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계사적 사건의 내용과 앞으로의 전개를 보다 충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을 포함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럽과 미국의 서양 문명과 비서양 문명으로 구분하였지만 이제는 동아시아 문명권과 인도를 중심으로하는 남아시아 문명권과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하는 서아시아, 그리고 이들을 연결해주던 중앙아시아로 구분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알아야 이해가 가능하고 전 지구적인 연대가 가능합니다. 그 대전제가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심에 유교와 도교와 불교가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알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칼럼리스트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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