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과 역사 인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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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8-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칼럼리스트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8-05 12:32 조회 3,801회본문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이 나뉠 수 없어, 불교는 서양철학 인식론의 한계를 넘어
저는 고등학교 때 반야심경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후 대학 진학 후 도서관에서 줄기차게 빌려보는 책 목록의 대부분이 불교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불광이라는 불교 월간지와 현암사의 불교개론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김동화 박사의 유식학을 거쳐 마구잡이로 읽어가다가 나중에는 선림고경총서의 선어록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역사를 공부하면서 불교 서적을 읽는 일이 좀 뜸해졌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사 인식론(認識論)이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고 그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는 나 자신은 현재에 속해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사적 사건의 내용은 역사가에 따라 평가가 서로 극단적으로까지 다르기도 합니다.
근대 역사학을 정립한 독일의 랑케가 주장한 객관주의적 역사학을 주창하였습니다. 역사가는 남아있는 사료(使料)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는 랑케의 주장은 19세기에는 절대적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믿음에 균열이 발생하였습니다. 상대주의적 해석이 등장하면서 사회를, 자연을, 세계를, 우주를 인식하는 인간의 인식작용은 객관성이 무너지고 주관성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세기 중반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현재 역사가의 대화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역사 인식의 주관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역사적 사실보다 역사가의 인식에 더 중요한 비중을 두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에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전제입니다.
19세기에는 그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카에 의해 역사가의 주관이 강조되었다가 20세기 후반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역사가에 의한 역사적 사실의 창작이라는 주장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변화는 서양 인식론의 원리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서양철학의 인식론은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을 나누고 그사이에 이루어지는 인식작용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식 주체를 우선하면 관념론으로 인식 대상을 중심으로 인식작용을 설명하면 유물론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그사이에 수많은 절충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이 과연 나뉠 수 있을까요?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인 사회와 자연과 이 우주에 속해있으면서 과연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비유하자면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듯이 이 세계에 속해있는 우리가 세계로부터 나를 분리하여 떨어져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결국 편의상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을 나누어 전개된 서구 철학의 인식론은 그 전제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암호 같기만 했던 반야심경의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을 서양의 인식론으로 비춰보니 너무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나아가 서양철학의 인식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내용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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