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무의식 그리고 잡념(雜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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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8-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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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8-05 12:37 조회 4,017회본문
심뽀이야기 10
수행이란 끊이지 않는 잡념을 제거해 가는 과정
아뢰야식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또 하나의 마음
수행(修行)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에 의해 수행에 집중할 수 없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세와 호흡이 안정되었는데도 오히려 잡념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 내가 수행을 바르게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정신이 집중되는 단계에서 잡념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정신집중의 정도가 더 깊어지면 먼저 떠올랐던 잡념은 사라질 것이지만, 다른 잡념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사실 수행이란 끊이지 않는 잡념을 제거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잡념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신집중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우리의 감각기관을 사로잡고 있는 온갖 대상들이 차단되고, 이로부터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 의해 억눌려있던 상념들이 떠오르게 된다.
일상적인 의식에 의해 억눌려있던 상념을 심층의식이라 하고, 억눌려있던 상념이 우리가 알아차리는 상태로 오를 때, 이것을 표층의식이라고 한다.
정신집중이 시작되면, 표층의식이 사라지면서 다른 심층의식이 표층의식으로서 떠오르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므로 수행 도중에 떠오르는 잡념이란 반복해서 표층의식으로 바뀌는 심층의식을 가리킨다. 이 반복적인 과정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의식이 모두 표출되어 제거될 때까지 지속된다.
그 잡념이란 곧 기억이며, 잡념의 표층의식으로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심층의식이란 우리에게 기억되어있는 내용인 것이다.
기억은 어떤 일을 겪은 다음의 그 나머지 세력(勢力)이나 기세(氣勢)로서 우리의 의식 속에 잠복해 있다. 기억이란, 과거에 이루어진 경험이 하나의 여세로서 우리의 의식 속으로 잠행(潛行)했다가 특정한 자극을 만나면 과거의 경험내용을 현재의 의식표면에 재생하는 것이다.
기억은 내면의 의식 속에 잠복
우리의 기억은 기억할 당시의 세계, 즉 대상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내면의 의식 속에 잠복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이전에 기억으로 잠복해 있던 경험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잠복 기능이 아예 없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의식 상태를 두 가지로 상정해 볼 수 있다.
한 가지 경우에는 경험한 내용이 의식의 어딘가에 전혀 저장되지 않을 것이므로 항상 백치 상태로 살아야 할 것이다.
본능에 의한 생존력으로 먹고 자는 생활만 반복될 뿐이며, 세계의 변화는 기억되지 않으므로 자신과 세계는 그때그때 보이는 정지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의 인간은 자신과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적용되지 않는 비현실에서 생존할 뿐이다.
다른 한 가지 경우에는 경험한 과거의 내용이 계속 겹쳐서 현재의 대상과 어우러질 것이므로 과거와 현재가 구별되지 않는 무분별의 상태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의 인간에게는 현실과 비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정신착란의 상태로 인해 실제의 삶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결국 기억이라는 잠복 기능이 없다면, 자신의 삶과 외부의 세계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당면한 현실 세계에 대한 앎이 기억으로서 잠복했다가 경우에 따라 의식으로 표출됨으로써 우리 자신과 세계는 변화하는 사실대로 존재하게 된다.
유식학은 기억이 잠복했다가 표출하기를 반복하는 두 가지 기능을 면밀히 고찰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밝혀 나간다.
행위의 습관처럼 의식의 표면으로
기억은 우리 마음의 어딘가에 스며있다가 물리적인 관성 또는 행위의 습관처럼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다시 말하면 기억은 잠복해 있다가 발동하는 정신적인 힘이므로 훈습(熏習) 또는 습기(習氣)된다. 이처럼 발동하지 않은 상태로서의 기억이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
유식학에서는 습기로서 존재하는 심층의식, 즉 기억을 아뢰야식이라고 일컫는다. 마음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을 누구나 당연히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뢰야식도 기억이라는 심리 현상을 주목한 말이지만 마음속에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마음으로 간주된다.
아뢰야식이 기억이라는 상태의 습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또 하나의 마음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아뢰야식을 결코 서양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유식학에서는 무엇보다도 아뢰야식으로써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간사를 해명한다는 점이 아뢰야식과 무의식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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