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들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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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8-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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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8-05 12:35 조회 3,810회본문
연명의료 27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야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 ‘사소한 일상’
많은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죽음을 앞두었을 때야 비로소 평생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떠오르기도 한다. 말기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후회하는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이라고 한다.
일상 속에서 죽음을 인식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며 사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갈등을 정리하고 떠나지만, 후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의심, 소외와 미련 속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게 된다. 생명을 부여받은 생명체인 인간이 삶을 정리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연명의료 치료를 위해 마음치유를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내가 만일 6개월 시한부라면’이란 주제로 글 쓰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50대 이상의 신앙 연륜이 깊은 분들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꽃씨처럼 날아와 심어졌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애정과 위트가 담긴 한 줄의 부고문을 쓰겠다.’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의 추억들에 작별하고, 그 땅에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내가 떠난 다음에 가장 힘들어할 사람과 맛있는 식사를 나누고 싶다.’
평소 가족들에게 낯간지러워 사랑의 표현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삶이 유한하다고 느끼면 달라지는 듯했다. ‘아내에게 나와 살아 줘서 고맙다고 말하겠다.’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맙고 너희들이 있어서 참 행복했다고 말하며 한 번씩 끌어안아 줄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진지한 자기반성이며, 그 반성은 삶에 대해 더욱 겸허하고 진실한 자세를 갖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살아있는 날의 장례식을 하고 싶다’는 글이었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함께 지냈던 이들을 초청해 토크 콘서트와 자서전 출판기념, 아내의 그림 전시회로 진행되는 삶의 마지막 축제를 열고 싶다고 썼다. “내 삶의 마지막 축제의 향연을 준비하고 싶다. 그날에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들을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들이며 미소로 답하고 싶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에 맞춰 6개월을 5단계로 나눠 죽음 준비에 관해 썼다. 그의 3단계 죽음 준비 목록에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옷은 수의 대신 입을 해군 정복 한 벌만 남겨두고 없앨 것.’ 하얀색 해군 정복을 입은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다 이해인 수녀의 시 한 편이 생각났다.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 하나가 네모난 상자에 누워 천천히 땅 밑으로 내려가네…”(이해인의 시 ‘하관’ 중에서)
삶이란 꽃씨처럼 땅에 심어져 꽃을 피우고, 꽃씨를 닮은 마침표를 찍고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할 때 자주 만지작거렸던 분꽃 씨가 기억이 난다. 까맣고 동그란 분꽃 씨를 터뜨리면 하얀 가루가 들어 있어 신기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꽃씨 같은 마침표 하나를 남기는 것이 인생일까.
분명한 것은 우린 유한한 인생을 살다 지수화풍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인생의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결정된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사소한 일상이다. 하루하루 속에 수많은 행복의 알갱이를 뿌려놓자. 그 작은 알갱이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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