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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념처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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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0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9-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도경스님의 수행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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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9-02 14:45 조회 3,4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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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념처는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3>
마음은 홀로 존재하지 않아··· 언제나 대상과 더불어 일어나, 모든 삶은 법의 일어남으로 이루어져 수행을 통해 통찰해야

‘아는가?’라고 물으면서 아는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법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을 계속 알아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법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게 됩니다. 법에 대한 이해가 진정한 자신에 대한 이해입니다. 앞서 ‘대상은 대상일 뿐이다.’란 말을 하면서 ‘보이는 것은 관념적으로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보인다는 성질로써 하나다.’ 라고 했습니다. 보인다는 성질이 바로 대상의 성질이고 그것이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는 마음의 작용을 계속 알아 가십시오. 계속 이해가 된다면 자주 자주 아는 마음에 대해 물으십시오. 제가 아는 마음에 대해 알아갈 때 하루 종일 5초에 한 번씩 아는가라고 물으면서 아는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아는 마음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을 때 마음이 더 이상 물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묻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 이였습니다. 

이렇게 수행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에 대해서 조금씩 더 깊이 이해해갈 것입니다.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이해할 것인가?


그런데 마음은 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대상과 더불어서 일어납니다. 안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아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됩니다. 

안다는 것은 마음이고 알아진다는 것은 대상의 작용입니다. 이 둘은 톱니의 양축과 같습니다. 한 쪽을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쪽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이해해감으로써 더불어 대상을 이해해가게 됩니다. 마음과 대상, 이것이 우리 존재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 일어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일어남입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는 실재로 모두 대상과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눈에서는 보고 보이는 것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고 귀에서는 듣고 들리는 것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과 대상을 이해해 감에 따라서 이 둘의 관계성도 이해해 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해가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해해가면 이해해갈수록 우리 삶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 조금씩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지혜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많은 수행자들이 어떤 특별한 체험이나 보통의 마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특별한 지혜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이 순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봄, 들음, 느낌, 맛, 냄새,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도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일어나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일어남을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일어남의 체험은 우리에게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특별히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런 일어남에 대해서 ‘자연의 이치다’ ‘대상이다’란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과 이런 일어남을 계속적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견해가 바르고 알아차림이 이어진다면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일어남에 대한 이해가 생길 것입니다. 


저의 스승께서 당신에게 특별한 지혜가 생긴 이야기를 가끔 해 주십니다. 한 번은 사야도께서 샤워를 하기 위해서 목욕탕에 들어가셨습니다. 물을 몸에 부으시고 비누칠을 하려고 비누를 잡아서 가까이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비누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사야도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왜 냄새는 코로만 맡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비누를 들고 계속 냄새를 관찰하셨습니다. 마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에 아주 분명한 지혜가 생겼습니다. ‘진짜 냄새는 코로만 맡을 수 있구나’ 라는 이해가 마음에 불현듯 생겨났습니다. 그 지혜로 인해서 마음은 아주 맑고 깨끗해졌고 아주 행복해졌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밖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도 냄새는 코로만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야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야도께서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각각 고유한 성질이 있어서 조건이 되면 각각 고유한 작용을 스스로 한다는 깊은 무아에 대한 지혜을 얻으신 것입니다. 이런 깊은 지혜를 얻기 위한 사야도의 체험이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냄새를 맡으신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사야도에게 이런 지혜가 생겼을까요? 

체험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체험은 보통의 체험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그 체험을 아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에 바른 견해의 지혜와 일어나는 것에 대한 관심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냄새 맡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생겼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법의 일어남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통찰해야할 것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 통찰의 지혜가 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믿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좋다’라고 말을 하면서 살지만 실제로 우리는 마음을 잘 모릅니다. 단지 막연히 마음을 ‘나’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마음이 있습니까? 예, 내게 마음이 있습니다. 보는 것이 마음이고 듣는 것이 마음이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본다.’라고 알지 않고, ‘내가 본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듣는다.’라고 알지 않고, ‘내가 듣는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곧 나라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과연 마음이 나일까요?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하는 존재입니다. 마음이 나라면 그 마음은 당연히 나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나 스스로가 나의 불행을 원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과연 나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지 한 번 봅시다.


건강상의 목적이나 다양한 사회적 목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합니다. 기본적으로 적게 먹는 것이 다이어트의 방법입니다. 안 먹어 봤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배가 고프면 마음이 반응하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대화체로 일어나는 생각을 마음이 ‘말한다.’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좀 먹자’ ‘조금 먹는 건 괜찮아’, ‘오늘 아침 몸무게가 2kg 줄었더라!’ 이런 말들을 하면서 나로 하여금 먹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먹기를 원하는 마음을 나의 마음이라고 알고 마음을 따라서 먹었습니다. 먹고 난 뒤에 마음이 행복할까요?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참한 기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에게 강하게 화가 났습니다. 화의 마음이 상대에게 이렇게 말해라 이렇게 행동하라고 자꾸 충동합니다. 

화의 마음을 나의 마음이라고 믿고 내가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며 화가 시키는 대로 화의 말을 하고 화의 행동을 했습니다. 하고 난 뒤에 마음이 개운할까요? 마음이 더 비참해질 것이 자명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나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행동의 결과가 나의 고통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은 나를 위해서 일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단지 마음일 뿐입니다. 자신의 고유한 성질이 있어서 조건이 형성되면 자신의 고유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화의 마음은 화낼 조건이 되면 화를 내고 욕심의 마음은 욕심낼 조건이 되면 욕심내는 작용을 합니다. 그런 작용에 전혀 나의 행복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만을 해나갈 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음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을 믿지 않습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일어난 줄 알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옳다고 알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하고 옳지 않다고 알면 그 마음이 시키는 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믿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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