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眞理)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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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0-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한주영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0-12 10:59 조회 3,099회본문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眞理)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부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많은 불자들이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진리(眞理)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는 <아함경>의 법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연기(緣起)란 연하여 일어난다는 뜻으로 모든 존재나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그 혼자서 독립적으로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무수히 많은 원인과 조건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인연생기(因緣生起)’라고 하며, 줄여서 ‘인연’이라고도 합니다.
연기를 깨닫는 것, 왜 중요한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하고 있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연기의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을 깨달으면 우리는 고정불변하고 절대적인 자아가 있다거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자가 있다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관점을 존재론적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와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무상(無常)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세계관으로 세계를 볼 때 우리는 당당히 주체성을 가지면서도 만물에 무한하고 평등한 자비심을 갖게 됩니다. 올해 2월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로 반년이 넘도록 모두가 힘겹게 견디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가 이렇게 흔들리는 사실을 보면 크다거나 작다거나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고 하는 관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 세계 모든 공항과 항구를 정지시켰습니다. 공장이 멈추고 자동차도 멈추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래서 서로 의존하고 있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연기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초기불교의 연기론은 대승의 화엄 사상에서 꽃을 피웁니다. 우리들이 많이 독송하는 법성게에 나오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은 화엄경의 핵심적인 교의(敎義)를 드러내는데, 작은 먼지 하나에 온 세계가 담겨있다는 뜻으로, 코로나19로 흔들리는 세계를 보며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무수한 관계 속에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 하나 소홀하거나 하찮게 볼 수 없고 또한 자만하거나 오만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변종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박쥐 등 야생동물에게 있던 것이 가축이나 다른 동물을 매개로 인간의 몸에 들어와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야생동물의 서식처가 부족해진 데 기인한다고 봅니다.
인류가 산업혁명이라는 것을 통해 엄청난 편익을 누리는 동안 지구의 평균온도는 1℃가 올랐고, 이로 인해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했으며 폭풍과 해일의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고 가뭄과 홍수 등 이상기온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더이상 살 수 없는 땅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 기후난민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고 이제는 산속에 있는 절에서조차 에어컨이 없으면 안 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유례가 없이 긴 장마와 폭우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비는 장마가 아니라 ‘기후 위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자리이타, 멈추고 돌아보자
불교환경연대에서는 ‘멈추고 돌아보기’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그동안 지구에 인간만이 사는 것처럼, 생태계를 제멋대로 파괴했던 개발과 성장의 경제를 멈추고,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조건인 줄 알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자연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생명 사회로 전환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자각하라고 하셨습니다.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지혜와 자비를 증장할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리이타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굳건히 하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나아가야 합니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앞에서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추어라. <잡보장경>
<필자 불교환경연대 한주영 사무처장 소개>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을 전공하고, 조계종 포교분과위원회에서 재가불자를 위한 신행체계화 연구를 하였으며, 불교여성개발원 사무처장을 역임, 현재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으로 부처님의 생명존종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연환경과 생명살림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석사 논문으로는 <안반수의 행법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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