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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비가 아닌 유사자비, 진짜 자비와 가짜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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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0-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법문 서브카테고리 하현주 박사의 마음 밭 가꾸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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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하현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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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0-12 10:19 조회 3,0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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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자비정원(慈悲正願)④ (회)

진정한 자비가 아닌 유사자비, 진짜 자비와 가짜 자비?

티벳 불교의 카규파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는 교훈 중 ‘유사해서 착각하기 쉬운 것’에 대한 교훈이 있는데, 그 중 ‘이기적인 행위를 이타적인 행위로 착각하지 말 것’과 ‘집착을 자비로 착각하지 말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비로워지고자 한다면, 어떠한 동기에서 자비로운 행동을 하는지, 그것이 진짜 자비인지, 가짜 자비인지부터 구분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자비의 함양을 위한 불교와 심리학의 학제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필자는 자비와 유사하지만 진정한 자비가 아닌 유사자비(pseudo-compassion)의 개념을 제안한 바가 있다. 자비가 병리적 이타주의의 형태가 아닌, 진정하고 건강한 자비가 되려면, 자비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가짜 자비를 변별해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에서 4가지 유형의 유사자비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자기애적 자비

다른 이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도움 받는 이에게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와는 상관없이 도움을 주고 난 후의 뿌듯함과 ‘도움을 주는 착한 자기’ 이미지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하는 듯 보인다. 

게바우어(Gebauer) 등은 이러한 양상을 공적 자기애(communal narcissism)라는 용어로 개념화한 바 있다. 자신의 중요함과 가치를 확인하려는 동기에서 기인한 이타주의는 병리적 자기애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와 같은 사적 자기애에 비해, “나는 가장 도움을 잘 주는 사람이다”라는 공적 자기애를 지닌 사람은 일견 이타적이고 자비로워보일 수 있지만, 도움받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타인을 도구로 하여 자신의 자존감을 고양시키려 한다는 건강하지 못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  


2) 반동형성적 자비

프로이트(Freud)와 동시대의 초기 정신분석가들 사이에서 자비는 잔인함과 무자비한 본능에 대한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실제로 모든 자비가 반동형성인 것은 아니지만, 잔인하거나 인색한 자기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서 반대로 자비롭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측면들이 드러날까봐 강박적으로 남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며 과잉보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그 자신에게도 비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동기를 점검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3) 슬픔에 압도된 자비

우리는 흔히 자비와 슬픔을 혼동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을 자비라 여긴다. 그러나, 『청정도론』에 따르면, 자비의 가까운 적은 슬픔이고, 먼 적은 잔인함이다. 고통받는 생명 앞에서 잔인함이 드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드문 일이기에 먼 적일 수 있지만, 슬픔에 빠지는 것은 우리가 자비심을 가질 때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에 가까운 적이 된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슬픔이 지나치게 되면 실제로 도움에 필요한 대처역량은 제한되고, 자신의 부정적 정서 자체를 처리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또한, 상대의 고통을 보며 느끼는 슬픔이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과거 자신의 모습과 유사한 고통이 환기되면서 경험되는 전치된 자기연민인지는 뚜렷이 구분하기 어렵다. 


4) 자기희생적 자비

우리는 이타적인 행동을 일삼는 자기희생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결핍된 욕구을 타인에게 투사하여 타인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도움을 주고, 또 상대방이 이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태도로 이어지는 패턴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도덕적 피학증(moral masochism)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성적 피학증과 달리 과도하게 윤리적이고 자기희생적이며 고통을 감수하는 태도를 보이는 피학적 성격을 기술한 바 있다. 

이들은 고통으로 점철된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이 끊임없이 도와야만 하는 주변인들을 원망하거나, 혹은 무시한다. 동시에 고난을 견뎌내는 자신이 도움을 받는 이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확인을 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자기희생을 반복하게 된다. 

선한 줄만 알았던 자신의 마음에 이처럼 불순한 의도가 섞여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사실 괴로운 일이다. 모두가 완벽하고 진정한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매순간 진정한 자비여야만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자비의 실천을 방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오늘 내가 실천한 자비는 어떠한 동기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점검하며 자신의 의도를 인식해나가려는 노력은, 거울에 묻은 얼룩을 닦아 본연의 맑고 자비로운 본성으로 돌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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