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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땅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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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7-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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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7-08 13:46 조회 5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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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땅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라까지
글로 보는 불교의 8대 성지

탄생의 땅 룸비니에서 영원한 해탈 쿠시나가라까지

성도 · 전법 · 결집 ··· 불자들의 영원한 고향


 불교의 4대 성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네 곳의 성지를 일컫는다. 부처님이 탄생한 룸비니 동산,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성도한 뒤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사르나트(녹야원), 입멸한 쿠시나가라 등 불교 성립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네 곳을 말한다. 이 네 곳을 ‘4대 성지’라고 한다. 이들 네 곳의 성지는 각각 붓다의 탄생 · 성도 · 전법 · 해탈을 상징하며 불자들의 영원한 고향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곳에 네 곳이 추가되어 8대 성지로 불리기 운다. △불교가 뿌리를 내린 포교의 땅, 라즈기르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물었고, 가장 많은 경이 설해진 땅, 슈라바스티 △도리천에서 논장을 설한 후 내려온 땅, 상카샤 △최초로 비구니 승가가 생겼고 마지막 안거를 하셨으며 제2차 결집이 이루어진 땅, 바이샬리이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부처님의 탄생장면을 묘사한 부조 조각상을 모시는 마야데비 사원과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와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전 목욕을 하고 갓 태어난 석가모니를 목욕시켰다고 알려진 연못이 있다. 


룸비니는 네팔 남부 타라이 지방 최대의 도시인 바이라와 서쪽 약 18km 되는 지점, 즉 티나우강 등 몇 개의 작은 강들을 가로질러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유적의 중앙에는 흰색으로 단장된 아담한 ‘마야부인당’이 있다. 사당 내부에는 표면의 침식으로 표정조차 확실치 않은 마야부인이 종자와 함께 나무 밑에 서 있는 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이 상을 손으로 만지면서 예배하고 있다. 보통 ‘마야데비 템플’로 불리는 사당의 남쪽에는 석존의 탄생시에 마야부인이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네모난 연못이 있어서, 옆에 선 큰 나무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남쪽으로는 승원터가 묻혀있다.

아쇼카왕이 건립한 석주는 마야부인당 서쪽에 있는데 현재의 높이는 약 7.2m이다. 석주의 일부에는 낙뢰의 흔적과 균열이 있지만, 표면에는 마우리야시대의 독특한 기법으로 갈고 닦은 광택이 그대로 남아있다. 기단으로부터 약 3.3m 되는 위치에 아쇼카왕의 비문이 보인다. 마야부인당 주변에는 벽돌로 만든 크고 작은 봉헌 스투파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일체 존재의 이치를 깨닫다 

성도지(成道地) 『붓다가야』


마하보디 사원/불탑,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 나무와 금강보좌, 부처님 성도 후 최초 7주와 관련된 7/7 선정터(정안탑, 연   꽃대좌, 무차린다 연못 등), 수자타 마을과 니란자나 강


부다가야는 비하르주의 가야시 남쪽 약 10m 되는 지점, 즉 동경 85도의 자오선상에 있다. 가야시에서 오른쪽으로 가야쉬르 샤언덕과 왼쪽으로 화르구강을 사이에 두고 전정각산을 바라다보는 평탄한 길을 가다 보면, 보드가야 대탑의 끝머리가 푸른 나무숲 사이로 멀리 보인다. 

이곳은 일찍부터 석존의 성도와 관련하여 ‘삼보디’, ‘마하보디’ 등으로 불려왔다. 또 13세기에 이곳을 찾아 온 티베트의 승려 다르마스바민처럼 ‘금강보좌’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화르구강의 지류인 나이란자나강의 언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석존 성도의 성지가 있다. 이 일대는 예전에는 모래에 묻혀있었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정비된 유적이 펼쳐지고 중앙에 대탑, 서쪽에 금강보 좌와 보리수가 서로 인접해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들을 에워싸듯이 돌로 만든 난간 기둥들이 쭉 둘러져 있으며, 또 그 주변에는 크고 작은 갖가지 스투파가 봉납되어 있다. 대탑 북쪽에는 석존이 성도 직후의 7일 동안,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즐기면서 산책을 했다고 하는 전설의 장소가 있다. 그곳에는 높이와 폭이 각각 1m 정도 되는, 콘크리트로 덮인 돌축대가 18m에 걸쳐 이어져 있고, 석존이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피어났다고 하는 열여덟 개의 연꽃이 상징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사성제 팔정도를 설하다 

‘초전법륜지(初傳法輪地)’ 『바라나시의 사르나트(녹야원)』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녹야원과 사르나트 박물관, 차우칸디 스투파, 다메크 스투파, 라지카 스투파 등과 아르띠 푸자 관람 및 석양의 가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녹야원은 현재 사르나트라고 불리며 바라나시 북동쪽 약 7km 되는 지점에 있다. 바라나시에서 사르나트에 이르는 지역 일대는 평탄하고 거의 기복이 없는 인도평야가 이어진다. 영불탑쪽에서 조망해보면 수림의 머리 너머로 원형의 돔 형식으로 세워진 다메크 스투파와 모가난 첨탑을 가진 현재의 무리가다바쿠티의 두 건축물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메크 스투파의 표면은 직선적인 기하학적 무늬나 새, 인물상 등이 꽃무늬 속에 배치되어 있어서 디자인이 매우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있는데, 이 장식 부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혀 시대적인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현장은 녹야원의 장대함을 기록하고 있다. 그 옛날 번영을 누렸던 이 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현장은 석존이 미륵보살에 수기를 준 흔적의 윗부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현재의 마메크 스투파인 것으로 추측된다.


영원한 해탈, 열반에 드시다 

‘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라』 


열반 당시에 부처의 사리를 보관했던 2번 스투파, 아쇼카 석주와 사리가 재분배되어 보관된 1번 스투파, 원숭이 연못, 비구니 승단이 최초로 시작된 대림정사 


쿠시나가라의 유적은 고라크푸르의 동쪽 전원 안에 남아있는 사라수의 원시림을 빠져나가 50km 남짓되는 카시야마을에 흘어져 있다. 5세기 초에 하리바라라는 신자가 기증한 전장 6m가 넘는 거대한 열반상을 모시는 열반당이 있다. 열반당의 약 1.5킬로미터 되는 지점에는 석존을 다비에 붙인 마쿠타 반다나 터로 추정되는 라마바르총이 있다. 이 스투파를 둘러 흐르고 있는 작은 시내가 바로 석존이 최후에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히라냐바티강이 라고 한다. 또 파바에서 쿠시나가라로 향하면서 병고에 시달린 석존이 물을 마시려고 했을 때, 마침 5백 명 의 대상들이 건너간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카쿳타강으로 추정되는 작은 시내가 그 더욱 동쪽 약 4km 지점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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