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제8식 아뢰야식의 모습(2)

페이지 정보

호수 25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1-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선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1-05 13:15 조회 3,166회

본문

연재글: 심뽀이야기 (13회)

제8식 아뢰야식의 모습(2)
자상(自相)·과상(果相)·인상(因相)

업(業)으로 생겨난 아뢰야식,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

인업(引業)은 데생, 만업(滿業)은 거기에 색을 칠하는 이치


과거의 업(業)은 선 또는 악이지만 그 결과로써 생겨난 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라고 한다. 그래서 제8식의 결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우에 종자가 현행으로 변화된다고 하는 의미로 이 심식의 이름에 ‘이(異)’자가 붙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과거의 동인(動因)은 선이든 악이든 그것에 의해 끌어올려진 현재의 결과, 즉 아뢰야식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무기’라고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현재의 자기 존재의 기체는 가치적으로 백지라고 할 수 있다. 

 

숙(熟), 종자 성숙의 현행 과정

왜 이숙=무기 즉, 자기의 기체를 백지로 본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 속에 숨길 수 없는 종교적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확실히 현재의 자기 존재는 과거의 업의 영향을 받아 그것에 속박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기를 성립시키고 있는 근원 그 자체는 과거의 업에서 독립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악에서 선으로 변화하여 종교적으로 구제될 수가 있는 것이다. 

‘숙(熟)’이라는 용어는 ‘성숙되다’, ‘결과를 낳게 된다.’는 의미이며, 어떠한 결과가 충분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유식에서는 종자가 성숙되어서 현행으로 드러나는 것을 숙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이므로 과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8식 속에 저장된 종자가 현재의 상황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움직이면서 인식을 결정하고, 자기 행동을 현행하게 되는 과정을 ‘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異), 종자가 현행으로 다른 결과

이렇게 결과가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이(異)’자가 주는 의미는 종자가 현행으로 다르게 변화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제8식은 이숙의 의미로서 과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일정하게 자기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가 변화되어서 현행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뢰야식을 과상으로 해석하여 이숙식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숙은 과거(前世)의 업에 이끌려서 생긴 결과이지만, 이것을 자세히 말하면 업(業)에는 인업(引業)과 만업(滿業)의 두 종류가 있으므로 이들에 의해 생기는 결과에도 두 종류가 있다. 인업은 자기 존재의 기체를 만들어 내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인업에 의한 결과가 아뢰야식이다. 그리고 만업은 그 기체를 살찌우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만업에 의한 결과는 전6식이다.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인업은 데생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만업은 거기에 색깔을 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종류의 이숙 중에서 제8아뢰야식을 진이숙(眞異熟)이라 하고, 그것에서 생겨난 전6식을 이숙생(異熟生)이라고 한다. 물론 전6식 전체가 이숙이라는 것은 아니다. ‘현명하다’, ‘어리석다’, ‘아름답다’, ‘추하다’고 하는 등의, 말하자면 선천적인 것만을 이숙생으로써의 6식이라고 한다.

이숙의 과상 중에서 결과가 처음으로 크게 나타나는 것을 전체적인 과보라 하여 총보(總報)라 하고, 이때의 아뢰야식을 진이숙 또는 이숙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총보에 의지하여, 세부적인 의식 활동과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을 별보(別報)라고 하고, 이숙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기에 이숙생이라 한다. 이것은 종자에 의해서 결과가 생기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며, 먼저 총체적인 과보가 크게 정해지고, 이어서 세부적인 종자의 작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연속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을 이숙식이라고 하는 것은 근원적인 심식에 해당하여 총보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아뢰야, ‘종자를 저장하다’ 뜻

제8식의 인상(因相)은 제8식이 어떤 원인이 되는 역할을 하는가라는 의미이다. 인상은 원인으로서의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을 말하며, 이 종자는 원인의 역할을 하며, 항상 보존되고 유지되어야만 그 기능을 할 수 있기에 집지식(執持識 : Adāna)이라 한다. 

종자가 어떤 결과를 낳게 할 수 있는 원인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상이라 한다. 그러므로 제8식은 일체의 종자를 지님으로써 어떤 결과를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원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제8식은 종자를 지님으로써 모든 일의 원인을 제공하는 인상의 모습과 함께 결과적으로는 현행으로 다르게 변화되어서 결과를 유출하게 되는 과상의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의 모습인 과상과 원인의 모습인 인상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제8식의 자상(自相)이다. 

제8식 스스로의 모습 즉 전체적인 모습이며, 이것을 우리는 아뢰야식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제8식은 주로 종자를 저장하며, 이에 의해서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종자를 저장한다는 의미인 아뢰야의 뜻이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과상과 인상의 전체적인 모습인 자상은 원인과 결과의 역할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자상의 이름인 아뢰야를 사용하여 일반적으로 제8식을 부르게 된다. 


그러므로 제8식의 이름은 일정한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과상으로는 이숙식이라 하고, 일체의 종자가 된다고 해서 원인을 제공하는 인상으로는 일체종자식, 또는 종자를 지닌다는 의미로 집지식이라 하고, 전체적인 입장인 자상에서는 종자를 지녀서 일정한 결과를 내게 되는 아뢰야식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