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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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1-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도경스님의 수행법문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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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1-12 15:12 조회 2,987회본문
‘자연의 이치다. 대상이다’는 그 자체의 알아차림으로 수행해야, 괴로운 느낌 가져오는 마음이 ‘나쁜 마음’… 욕심 · 화 · 어리석음
알아차림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을 알고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도 물론 알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관념적인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해석, 정의, 묘사, 이야기를 알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앎이 수행에서 말하는 바른 알아차림은 아닙니다. 수행에서 말하는 바른 알아차림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른 견해입니다. 맨 처음 수행하는 수행자에게는 ‘자연의 이치다.’ ‘대상이다.’란 바른 견해가 주어집니다. 자연의 이치다, 대상이다란 바른 견해를 일으키면서 알아차림을 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연의 이치가 무엇인지,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마음에 생겨나갑니다. 이런 지혜는 바른 견해를 일으킬 때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마음에 작용합니다. 이 지혜의 작용으로 인해 수행하는 마음이 대상으로부터 좀 물러난 듯이 느껴지고 좀 가벼워진 듯이 느껴집니다. 대상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줄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생겨납니다. 수행하는 마음이 좀 더 바르게 된 것입니다.
수행에서 어떤 것을 보고 어떤 체험을 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는가 입니다. 붓다께서는 수행방법을 이야기하시면서 항상 그것을 그것 자체로 알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연의 이치다, 대상이다.’란 것을 이해한 마음은 일어나는 것을 그것 자체로 알아차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가지고 알아차림 수행을 하게 되면 조금씩 대상에 대한 이해가 생깁니다. 이렇게 생긴 대상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이 후 그 대상을 알아차림 할 때의 바른 견해가 됩니다.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대상을 좀 더 바르게 알아차림 하게 됩니다. 대상을 바르게 보면 볼수록 우리는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갑니다.
바른 알아차림의 대상은 실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것은 실재하는 법의 특성입니다. 실재하는 법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재하는 법을 대상으로 알아차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수행하면서 우선 6가지 감각기관의 일어남을 각각 따로 따로 알아갑니다. 가볍고 자유롭게 알아갑니다. 마음의 힘이 좋아지고 능숙해지면 한 순간 많은 것을 한꺼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알 때 나는 각각 하나 하나의 대상을 알려는 마음을 전혀 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이 되었을 때 마음의 아는 작용이 이해됩니다. 우리는 아는가라고 물으면서 안다는 것이 이해되는지를 체크해봅니다. 안다고 수긍되면 바로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는 마음의 작용은 어떤 모양, 형태, 위치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작용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념화되지 않으면서 고유한 성질과 작용으로 존재하는 것을 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수행의 점차에서는 아는 마음의 작용을 이해했을 때 실재하는 법을 대상으로 알아차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실재하는 법은 아는 마음 이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실재하는 법 가운데 모든 마음의 작용들과 언제나 함께 작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의 작용이 아는 작용이여서 우리는 이 마음의 아는 작용을 기본적인 수행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신심, 노력, 지혜, 마음의 고요함, 알아차림이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개발해가는 좋은 마음들입니다. 이런 마음들은 개별적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수행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의해 균형 있게 개발되어갑니다. 우리가 가장 주체적으로 해가는 것은 알아차림입니다. 무엇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은 대상과 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화가 났을 때 화를 알게 되면 화와 화를 아는 마음 사이는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이렇게 멀어지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는 마음이 약해지고 집착하는 마음이 약해지면 동요하는 마음이 약해집니다.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면 고요해집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바르게 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고요함의 힘이 커집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됩니다. 실재하는 법인 마음의 아는 작용을 좀 더 분명히 알아차림 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고요하면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혜가 생겨나고 지혜의 작용을 이해하면서 정말 좋은 마음이 생기는 구나, 이것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로인해 신심이 생깁니다. 지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신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심이 생기면 더 하고자 하는 마음의 에너지가 생깁니다. 신심으로 인해서 노력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노력의 힘이 생기면 더 알아차림을 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5가지 좋은 마음은 서로 원인과 결과로 묶여 있습니다. 바르게 수행하면 서로 균형 있게 5가지 좋은 마음의 요소가 함께 개발되어 갑니다.
나쁜 마음이란?
그 마음이 있을 때 괴로운 느낌을 가져오는 마음을 나쁜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들은 크게 욕심, 화, 어리석음으로 설명합니다. 물론 이 마음들도 고유한 성질이 있어서 조건이 되니까 자연스러운 자신의 작용을 하면서 일어난 법입니다. 마음의 느낌이 좋지 않고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나쁜 마음이라고 합니다.
화
세 가지 마음 가운데 가장 나 자신과의 동일시가 약한 마음이 화입니다. 나와 동일시가 약하기 때문에 이 마음을 아는 것은 다른 것에 비해서 쉽습니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쉽게 자신이 화가 났을 때 화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가 있을 때 마음이 괴롭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고 그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던 마음입니다.
화의 기본적인 성질은 피하려는 성질, 없애려는 성질, 괴롭히려는 성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났을 때 화가 어떤 작용을 하는 지 보십시오. 그 사람 욕을 계속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 지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실패해서 망해가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합니다. 화가 나빠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성질이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눈에서 일어난 마음이 보는 작용을 하듯이 화는 일어나면 부수고 괴롭히고 없애려고 합니다.
화는 항상 스스로 더 커지려고 하고 다른 이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화가 났을 때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 한 번 보십시오. 화가 났을 때 화의 마음은 화가 난 상황에 대해서 더 안 좋게 해석합니다. 그 상황을 더 안 좋게 해석하면서 더욱 크게 화를 냅니다.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났을 때 화의 마음은 그 사람을 실재보다 더 안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내고는 더 크게 화를 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괴롭도록 생각하는데 아주 능숙합니다. 화는 자신이 다른 이에게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이에게 화가 났을 때 화의 마음은 제 3자에게 가서 내가 화난 사람의 험담을 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화난 사람을 주제로 3자와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 험담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입이 근질근질 합니다. 결국에는 험담을 하게 됩니다. 이것도 화의 성질입니다.
이런 화는 우리에게 쉽게 알아지는 화입니다. 실재 화는 이런 것들보다 훨씬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화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안 일화가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남방스님으로 살고 있을 때 어느 날 아침 대중스님들과 탁발을 나갔습니다. 맨 뒤쪽에서 따라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탁발하는 스님들이 앞줄과 뒷줄로 나누어졌습니다. 그 때 내가 ‘왜 뒷줄 맨 앞의 스님이 앞줄을 빨리 따라가지 않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알고 그 생각이 화가 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까 일상에서 수많은 화를 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낮에 법당에 들어오니 불이 켜져 있습니다. ‘왜 불이 켜져있지?’ 라고 생각합니다. 화가 생각한 것입니다. 신발이 서로 삐뚤게 놓여 있습니다. ‘왜 저렇게 놓여 있지?’ 화가 한 생각입니다. 내가 정해놓은 것과 상황이 조금만 달라도 마음은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그것이 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는 다양한 형제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 불안, 초조, 슬픔, 우울과 같은 마음들은 모두 다 화와 같은 성질의 마음들입니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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