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종교로서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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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3-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리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3-05 14:05 조회 2,572회본문
과학과 종교의 조화가 필요한 시기, 현대인의 ‘치유’ 사상으로 자리매김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은 매우 혹독하였는데 마을마다 있던 사찰의 재산은 나라에 의해 몰수당하고 사찰을 서원으로 개조하면서 산중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승려를 천인의 하나로 격하시켜 양반들이 절에 놀러와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면서 승려들을 노비처럼 부렸습니다.
특히 명승지인 곳은 양반들이 승려들을 동원해 가마를 들게 하고 그 위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행위도 저질렀지요. 사실상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는 쇠퇴할 대로 쇠퇴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왕조가 멸망하면서 일부 인사들이 새로운 서구사상을 받아들였지만, 그 서구사상 또한 침략자들의 논리에 다름없었죠.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시기의 일본의 침략 논리는 서구 열강의 침략 논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지만, 그러한 내용에 무지했던 사람들은 서구 사상을 구세(救世)의 논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유교에 의한 종교적 차별이 사라지자 불교는 민중의 종교로 널리 전파되어 가장 큰 신도 수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러한 불교가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실시되고 미국의 영향력이 지속되면서 다시 한번 커다란 차별을 받습니다. 미군정기 때부터 크리스마스는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었고 초파일은 197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공휴일로 지정되었죠.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막대한 구호 물품은 대부분이 교회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나눠주었고 학교나 병원 설립 등과 같은 과정에서 많은 혜택을 입었습니다. 물론 서양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에 이해가 깊었던 개신교였기에 교육과 의료 선교를 활발히 전개하여 가능했던 일이죠. 불교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교세가 위축되었습니다. 물론 신도 수가 증가했지만 그것은 아직 산업화 이전의 세대들이 전통 신앙에 충실했기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이후를 거치면서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친 교세에 불교가 뒤처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 속에 불교는 사실상 사회적 영향력이나 신도 수에 있어서 소수종교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하고 소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증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고전 읽기의 열풍은 그러한 현상의 한 단면이고 젊은 세대는 불교를 종교로써 접근하기보다 현대인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상으로서의 성격이 짙습니다. 자연 친화적이고 생명을 중시하는 성격을 지니면서 자신을 파괴하려는 상대방과의 공존이 가능한 것은 제가 보기에 불교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요?
한편으로 나이 든 세대들에게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부담을 벗어나 자신만을 위해 충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길잡이로 불교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사상과 종교와의 충돌이 빈번하게 있었습니다.
이제 종교적 논리로 이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메커니즘이 밝혀지는 것과 비례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과학과 갈등 없이 상호 영향을 주는 사상이나 종교에 대한 요구가 점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특정 종교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과학과 종교의 조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이해관계에 기반한 건조한 인간관계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늘어나면서 명상이라는 콘텐츠가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불교가 재조명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평균수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의 품을 떠나면 사실상 부부의 역할은 다하게 됩니다. 예전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한 시점에서 대부분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이제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서고 조만간 백세시대가 가능해지면서 주어진 수십 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위의 사물이 익숙해져 새로운 것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때가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부부도 두 사람이 유기적으로 협조할 자식 부양의 의무가 다하면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의 종교로서 불교가 다시 조명을 받는 까닭이죠. 이제 우리 모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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