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종교, 생성과 소멸 반복의 과정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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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9-12-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칼럼리스트 김태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1 03:43 조회 5,174회본문
불교의 세계관 ‘연기론’, 현대 갈등의 치유책
성공회대 신영복 선생은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중에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년간의 옥살이를 한 이후 년 1988년 출옥하고 펴낸 책이 옥중서간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27세부터 47세까지, 새파란 젊은 시절부터 장년의 나이까지 그는 무문관에서 장좌불와로 참선하는 선승처럼 끝없는 사색과 자기 성찰로 채워 그 결과물로 여러 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강의’라는 책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20대에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여자란 무엇인가’ 등을 통해 동양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되었다면,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는 본인의 삶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묵직하게 실려있는 것으로 또 다른 감동을 느꼈습니다. 문자를 통한 만남이었지만 한문이란 장벽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고 낡은 것이란 편견으로 외면했던 동양 고전이 새롭게 보이는 문을 열어준 분들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삶에서 감옥은 또 다른 스승을 만나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교촌 이구영 선생님. 충북 제천의 반가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친일 형사에게 체포되었습니다. 해방 후 북한으로 월북한 뒤에 남한에 남파되었다가 우연히 길 위에서 일제 때 자신을 체포한 그 형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의 형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이구영 선생을 다시 체포하게 되죠. 한번은 일제의 앞잡이 형사로, 또 한 번은 대한민국의 형사로 동일한 인물에 의해 두 번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구영 선생은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마침 같은 곳에 있었던 인연으로 감옥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구영 선생의 지도로 동양의 고전을 다시 공부하게 됩니다. 그 공부는 세상사에 휘들리지 않고 온전히 경전의 내용에 침잠하여 이루어진 참 공부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찌보면 감옥은 그에게 최상의 공부방이었던 셈이었죠. 비유하자면 17년의 유배생활이 없이 다산의 ‘여유당전서’가 이루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고답적인 형이상학적 성격이 서양에 비해 적은 것은 분명합니다. 서양 문명이 아마 초월적 존재를 전제하고 사상이 전개된 탓이 클 것입니다. 따라서 서양문명이 종교와 과학의 길항관계로 전개되었다면, 그래서 종교가 과학을 억압하기도 하고 과학이 신학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면, 동양에서 종교는 자연이었고 따라서 과학과 종교는 그닥 대립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현실주의적이었던 탓에 눈앞에 펼쳐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였고 수많은 존재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의 종교학자들이 처음 동양 종교에 접하고 매우 당혹해했습니다. 거기에는 서양의 신과 같은 절대적이고 초월적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도 매우 훌륭하게 종교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상을 본 까닭이었습니다. 동양의 종교는 궁극의 존재에 매달리기 보다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과정에 주목한 것이죠.
서양 문명의 폐해를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IS라는 이슬람국가는 온전히 서구의 침략에서 비롯된 결과물입니다. 천여 년에 걸친 기독교와 이슬람 두 문명의 피비린내 나는 다툼이 근본적으로 두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두 종교의 공존은 각각의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대교를 포함한 세 종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관계라는 점입니다. 구약에 해당하는 내용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래서 끊임없는 대립과 투쟁의 역사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또한 기독교적 세계관의 전통위에 세워진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제 서유럽과 미국과 대립하던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냉전체제는 무너졌지만,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이 새로운 대립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치유책의 하나로 저는 동양적 사유방식이 충실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불교의 상의상존적 세계관인 연기론이나 도교의 상선약수와 같은 세계관이 이러한 갈등의 치유책이 아닐까요? 신영복 선생님은 서구문명의 산물인 사회주의라는 사상을 갖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동양 고전에 대한 공부로 어쩌면 두 사조의 융합을 이루어낸 것은 아닌지 ‘강의’를 읽고나서 떠오른 저의 단상입니다.
<칼럼리스트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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