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계가 행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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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9-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연재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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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9-12 14:25 조회 287회본문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계가 행하는 바이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계가 행하는 바이다
한번 내디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대성사 홀로 시작한 길은 뒤따르는 이들의 발길에 의해 넓어졌다. 그야말로 모든 이들이 함께 수행의 길로 나아갈 대승의 수레가 다닐 정통 밀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날 새로운 종단을 선포하는 의식에서 종단의 서원을 담은 진언이 염송됐는데, 총지종 창종에 대한 큰 바람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보여주었다.
옴자례주례준제 총지종 교세발전 사바하
옴자례주례준제 부국강병 국태민안 사바하
옴자례주례준제 조국평화통일 사바하
옴자례주례준제 일체교도가정제재난 사바하
옴자례주례준제 일체교도가정소구여의 사바하
수행이 개인의 기복에 있지 않고 총지종의 교세가 발전하여 나라와 사회가 평안하고, 조국이 통일되며, 모든 교도의 가정에 구하는 바가 두루 이루어지길 축원하며, 세상살이에 겪는 어려움이 사라지길 바란 것이다. 종교는 개인의 염원에서 출발하여 일체중생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바라는 바가 있기에 믿음에 의지하고 고통이 있기에 신앙을 갖는다. 그 출발은 개인적이지만 결국 나라와 뭇 생명의 행복을 원하는 것도 종교가 지향하는 바이다. 첫 의식의 서원은 이런 축원을 담은 진언으로 시작되었다. 공공서원의 기본 틀은 오늘날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계가 행하는 바이다.”
일의 진행에 대한 대성사의 말씀이다. 법계는 총지종의 창종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모든 일이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창종을 선포하기 이전에 이미 서울 충정로(관성사)와 경주 구정리(승천사), 경남 밀양군(일상사), 서울 동대문(밀인사), 경북 안강읍(건화사), 경주 서부동(국광사)에 법단이 설치되고 스승이 임명돼 새로운 밀교의 교화가 시작되었다. 스승들은 수행과 함께 교도를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졌다. 당시 대성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주저도 없었다.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필요한 사항들을 알려주니 스승과 교도들의 마음 또한 굳게 자리를 잡았다. 누구나 물러서지 않는 정진을 기약했고, 법을 전하는 일에 두려움이 없었다. 좋은 일은 나서서 칭찬하고 삼갈 일을 보면 세세히 일러 길을 알려주었다.
“세속 사람들이라도 수양 있는 지성인이라면 인생관을 세우고 생의 가치를 확립하고자 하거늘 하물며 중생을 제도하는 성직자로서 뚜렷한 주관이 없이 어찌 남을 제도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봉사하고 인류평화를 위한 지도자로 자처할 수 있겠는가? 대승보살행은 결코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생생하게 인생의 고락을 겪으면서 그것을 소재로 인격화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수행이기 때문에 오상선신五相成身의 불퇴전의 각오로써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종이 선포되면서는 곧바로 부산 정각사, 포항 수인사, 청주 혜정사에 선교부가 개설됐다. 초창기에 생긴 선교부들은 대다수 진각종 스승과 교도 출신들이 대성사를 믿고 그 길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시작된 곳들이다.
대성사는 바르고 참된 생활 자체가 곧 불공이므로 때와 장소를 정하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나 부처님을 염하고 진실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사원은 자연스럽게 도심에 세워졌다. 바쁜 현대인들이 생활하는 틈틈이 언제든 쉽게 들를 수 있는 수행도량이 되도록 중생들의 삶의 현장 바로 곁에 사원을 건립했다. 대중들이 내 집처럼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현대식 건물에 사원을 조성하고 수행과 사무행정에 적합한 실리적인 구조를 갖췄다.
또한 밀교의 근본 가르침을 시대 변화와 대중의 요구에 발맞춰 새롭게 정립했다. 세간과 출세간, 생활과 불교, 남녀노소, 승속의 구분 없이 기도와 생활이 하나되어 성불과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종단으로 구체화했다. 생활불교의 실천은 승가와 재가가 함께 닦는 ‘승속동수僧俗同修’로 발현되었다. 진각종에서 20여 년 동안 교화의 중심에서 활약한 원정 대성사는, 그런 만큼 창종 이후 제반 제도와 직제를 구비하는 시간도 크게 단축시켰다. 창종 1년도 채 안 되어 1973년 6월 27일 당시 총지종의 총본부인 성북선교부에서 전국의 교역자와 교무가 모인 가운데 전국 총회를 개최했다.
임시의장 록정 정사의 사회로 종헌을 심의 가결하고 만장일치로 대성사를 종령으로 추대했다. 역사적인 제1회 강공회와 중앙종회, 원의회를 개최하여 종단의 직제와 행정 및 심의 기구를 확정했다. 종단의 최고의결기관인 중앙종회와 행정기구인 통리원 원의회를 구성함으로써 수행과 교화를 뒷받침할 종단의 행정과 심의체계를 완벽하게 갖췄다. 해가 바뀌면서 연초인 1월 9일 총지종 교도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 정해졌다. 교도맹약敎導盟約이다.
1. 부처님의 가지력加持力에 일심귀명하고 신심信心의 변동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2. 4은10선四恩十善의 가르침을 받들어 6행六行을 실천하겠습니다.
3. 인과응보의 진리를 굳게 믿고 이단사설異端邪說에 미혹되지 않겠습니다.
4. 화합과 단결로써 국가사회에 헌신봉사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겠습니다.
5. 교법敎法에 수순하고 정법과 정도와 정의를 세워 현세정화에 정진하여 국가와 종단을 결정코 수호하겠습니다.
6. 부처님의 화타정신化他精神을 본받아 5세대 제도의 의무를 꼭 이행하겠습니다.
이는 종교인의 윤리적 덕목과 불교도로서의 의무를 규정했을 뿐 아니라 특히 밀교의 가르침을 남을 위해 적극적으로 전하겠다는 전법의 서약이기도 했다. 아울러 대성사는 전법과 교화를 위해 스승과 교도들을 뒷받침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1973년 용달과를 설치하여 전국 선교부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일괄 구매하여 나눠주었다. 스승들은 강공회를 마칠 때마다 갖가지 교화용품을 한아름 들고 돌아가기도 하고, 교도들에게 나눠줄 총지의 법문과 다라니, 희사용지 등을 트럭에 가득 싣고 전국 각지를 돌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 법을 설한 것을 근간으로 삼아 2세대를 제도한 교도에게 시교試敎의 지위를 부여하고 5세대를 제도한 교도에게 전교傳敎의 지위를 부여하여 전 교도가 교화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스승을 위한 공제기관인 ‘심우회’를 설치하여 건강, 재해, 자녀교육, 노후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반 복리후생제도를 법규화했다. 오늘날의 연금제도를 이미 50년 전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1972년 12월 28일 포항선교부 설단불사
1978년 제11회 중앙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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