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제 12대 종령 법공 대종사 특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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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5-19 신문면수 6,7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총기 50년 부처님오신날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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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5-20 10:44 조회 2,842회본문
“우리 불공법은 미래불교에 큰 희망의 지표가 될 것”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데는 진리적인 고행의 힘이 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최상에 가장 가까운 결과를 낳아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나쁜 짓 말고 착한 일 많이 해라’
“선업을 습관화하기까지 특단의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총기 50년,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종령 법공 예하를 예방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른 삶을 위한 특별 법문을 청했다. 본지 기자와 인터뷰 형태로 경북 영천 종령 예하의 사가에서 진행되었다. 종령 예하는 1943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총기 원년 종단에 입교, 1983년 중앙교육원 아사리과정 수료 후 통리원 및 총지사 근무를 시작 했다. 제 10대, 13대 통리원장과 학교법인 관음학사 동해중학교 이사, 불교총지종유지재단 이사장 등 종단 소임을 두루 역임했다. 정각사 주교를 마지막으로 2009년 1월 기로진원 후 2018년 1월 18일 제139회 승단총회에서 제 12대 종령으로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편집자 주
1.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지 2,5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시대를 뛰어넘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이며, 그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할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단하게 요약(要約)하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여섯 분의 부처님이 계셨습니다.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이고 석가모니불은 일곱 번째 오신 오신 부처님 이십니다. 일곱 분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통된 가르침이 있으니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고 합니다.
제악막작(諸惡幕作) 중선봉행(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며,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
스스로 그 마음을 맑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화엄경, 법화경, 팔만사천 법문할 것 없이 쉽게 요약하면, 부처님이 중생에게 명료하게 가르치신 내용이 한마디로 ‘나쁜 짓 말고 착한 일 많이 해라’입니다.
우리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생사(生死)간 고통은 악한행으로 오는 것이며, 착한행을 하면 ‘안락’이 따라옵니다.
부처님 법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것은 하루하루 생활 가운데서 찾아보면,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불교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경전 들썩일 것 없이 하루 일상생활 가운데 착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비교해 봅니다. 쉽게 말해 내 생활 가운데, 주변에서 하기 쉽고 작은 것부터 착한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업은 반복된 행동에서 습관되어 굳어집니다. 사소한 언어, 음식 등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좋은 습관이나 나쁜 습관이 됩니다.
선업(善業)은 습관화 될 때까지는 힘이 듭니다. 예컨대, 건강을 지키는 운동법 하나라도 안 하던 것을 하려면 지속(持續)적으로 잘 안됩니다. 습관화 될 때까지는 힘들더라도 특단의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악한 업을 억지로 버리려 하기보다도 선업에 힘을 기울이고, 그렇게 쌓다보면 악함은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착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내 생활에서 고통은 점점 멀어지고 좋은 일은 가까워집니다.
2. 올해가 총기 50년입니다. 종령님께서는 종단 창종과 동시에 입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총지종과의 인연담을 듣고 싶습니다.
전생에 불연(佛緣)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피부병(태중병-胎熱)을 가지고 태어났답니다. 광주리에 담아 선반에 놓고 살면 다행이다 할 정도였다니. 당시 조모님이 다급한 마음에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손자 살릴 방법을 물었답니다. 명을 이어주는 명부(命父)로 스님을 만나야 살 수 있다 하여, 스님과 명부(命父)의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할머니를 따라 1년에 몇 번씩 절에 찾아가 어린 나이에 무릎이 아프도록 계속 절을 했었고, 난치병도 차츰 쾌유되어 지금껏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불교와 인연으로 치자면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총지종 인연은 고모이신 불멸심 전수님이 진각종 스승이셔서 그 인연으로 포항 보정심인당에 교도로 다녔습니다. 얼마 안 되어 총지종이 창종되었고, 전수님을 따라 수인사에서 처음 총지 교도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승직은 총기 12년에 입사(立師)했습니다. 절에서 대학입시 준비를 하다가 출가의 인연이 잠시 있었고, 새로운 사회를 꿈꿀 기회 없이 부모님 농사를 이어 받아 사과와 포도를 키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종단은 종조님을 비롯한 복지화 전수님 등 진각종에서 수행과 원력이 크신 분들이 주축을 이뤄 총지종을 창종하고, 한참 인재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수인사에서 불공을 하고 있는데, 묘행정 전수님께서 내년 새해불공을 총지사에서 해보기를 권유하셔서 서울 본원에서 새해불공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종조님을 처음 뵈었지요. 주교이셨던 복지화 전수님께서 각자님은 부처님 인연이 지중한데, 종단에 입사(立師)를 권유하셨습니다. 사실 그때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답을 드렸었죠.
그후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2년간 병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술후유증으로 다리를 잘라 내야한다는 판정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 저의 마지막 의지처는 불공뿐이 없었습니다. 수인사에서 깁스를 한 상태로 49일 불공정진에 들어갔지요. 때마침 수인사 학생회 하계 수련대회로 록정, 환당, 법장화, 복지화 스승님들이 다 오셨는데, 복지화 전수님께서 첫마디에 “그때 종단에 안 들어와서 그렇다.”하시는데 그 말씀이 가슴에 꽂혔고, 내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낫기만 하면 귀의하겠다는 서원으로 정진했습니다. 그 이후로 병세가 호전되고 나아지면서 승직에 들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과수원 수입이 매년 집 한 채씩 그 이상 수입이 보장이 될 만큼 한창 수입이 한창일 때라 재물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금전 때문에 결심을 바꿀 수가 없었지요.
사람이 어떤 결심을 해서 이행을 하는 데까지 반드시 순조롭지 않은 마장(魔障)이 있습니다(호사다마(好事多魔)). 그때 행하지 않으면 또 다른 장애가 생겨서 잘 안 된다는 것을 삶의 경험을 통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하고, 결심을 했으면 바로 그 때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종령님 삶에 영향을 주신 스승님들에 대해 궁금합니다. 어떤 분들이 계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 법을 물어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문수, 보현보살뿐만 아니라 뱃사공, 상사꾼, 여인 등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가 선지식이며, 스승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많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큰 스승이었다고 생각 됩니다.
부친이 여덟 살에 돌아가셔서 조부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고조부님이 좌수벼슬이셨는데, 증조부님이 부친(고조부)의 위세로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조부모님은 8살 어린 나이에 그야말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남의 배내기 송아지를 얻어 키워서 자수성가하여, 30호 마을에 두 번째 가는 부를 이뤘지요. 땅을 더 사고 재산을 더 늘릴 수도 있었지만 자녀 교육을 위해 선비를 초청해 사랑채에 서당을 차려서 아버지를 비롯해 근동 젊은 사람들이 한학을 배웠습니다.
조부님은 글을 한 번도 배우신적이 없으나, 반듯하신 성품으로 조그만 비위나 비리는 절대 용납이 안 되며,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 등 많은 교육적 영향을 주셨습니다. 휘파람을 불면 선비답지 못하다할 정도로 훈육이 엄격하셨습니다. 조부모님의 지엄(至嚴)한 눈빛은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섭고 고통스럽고 불편했지만 그분의 교육 공덕이 현재 나를 세워준 기초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중학교 때 김재진이라는 짝꿍 친구가 있었는데, 시인 입니다. 그 친구 영향으로 어려운 시절에 많은 책을 읽고, 사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춘원 선생 작품을 거의 다 봤는데 내용의 대부분이 불교와 관련이 있었으며, 인과 관계 문제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외에도 타종교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동학의 수운 선생의 인내천 사상,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부처님 말씀 중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조금도 차별이 없다’는 가르침과 같은 맥락입니다.
4. 일반 대중들이나 현교의 불자들에게 총지종의 밀법을 설하신다면 어떤 법문을 내리시겠습니까?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은 인간 세상을 떠난 산중이 아니라 세간의 인간 제도를 위해 가르침을 펴신 것인데, 자기만의 득도를 위해 선방에서 화두에만 몰두하고 있거나, 초파일 등 일 년에 몇 번 절에 다니는 형태로는 부처님의 바른 뜻을 펼치기가 어렵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총지종 창종 당시 종조님의 “생활이 곧 불교요, 불교가 곧 생활이다. 생활하며 닦고 닦으면서 생활한다.”는 가르침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특히 ‘사사불공 처처불공 시시불공’이라는 총지종의 불공법은 전통 불공 개념을 뒤집는, 말하자면 가히 혁명적이었죠. 과거 불공은 지정된 날짜, 초파일, 동지, 재일 등에 스님께 위탁되어 염불하고 절하는 것이었지요.
절에 가야만 불공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 모든 일이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다 불공 아니겠습니까.
월초불공, 자성불공과 49일 불공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수행하는데 잘 맞춰져있습니다. 부처님 재시 열대지방이다 보니 하안거가 있었고, 북방불교로 넘어 오면서 석 달 동안거가 생겼습니다. 실제 일반 생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수행법이죠. 종조님께서는 이것을 생활에 맞게 49일을 상하반기로 나눠서 불공법을 만드셨습니다. 특히 저는 우리 총지종의 다양한 불공법 중 월초 7일 불공법이 가장 이상적 생활불공법이라고 자부 합니다.
서원은 중생, 성취는 부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서원이 클수록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종단이 지금은 비록 역사가 짧고 미약하지만 우리 불공법은 앞으로 미래 불교로써 큰 희망의 지표가 될 것입니다.
5. 종령님께서는 통리원장을 비롯한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는 등 전법과 종단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대개 즐겁고 기뻤던 기억보다 힘들었고 잘못한 일이 더 기억이 납니다. 명예와 재물은 특히 엄중경계 해야 하며, 명리를 탐해서는 더욱 안 되고, 지혜롭다면 가장 멀리할 분야라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50대에 최초로 통리원장을 맡았는데 3년 임기 중 1년 반 만에 자진 반납했고, 재임에도 역시 1년 반 만에 그만 둔적이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임기를 채우기 위해 신념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외골수 신념 때문에 미련 없이 통리원장 사표를 두 번씩이나 냈죠. 종령직도 전력을 봐서는 6년을 다 채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너무 내 성격만 내세워서 두 번씩이나 그만 둔 건 좀 성급했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인욕하고 밀고 나갔더라면 종단에 적은 성과라도 결실을 이뤘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통리원 총무부장할 때 정각사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해결 차 왕래하다가 결국 정각사 주교까지 떠맡게 된 적이 있습니다. 너무도 뜻밖에 최대 규모의 대표 사원의 주교가 되다보니 여러 가지 고충이 많았습니다. 교화 경험도 전혀 없고, 설법 경험도 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 차원 내에서 몸부림 쳐야했지요.
100일 간 매일 천배, 철야정진, 칠정진, 사경 등 누가 시키지 않았으나, 선대 스승들이 보여주었던 보석 같은 진리를 거울삼아 과감하게 부딪히고 정진해 나갔습니다. 고행을 통해서 교화라는 분야에 힘을 얻는 계기가 됐지요.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데는 지식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진리적인 고행의 힘이 가장 큽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길흉간 내 앞에 온 것은 업이고, 업을 풀어야하는 것도 바로 자신입니다.
6. 평생 종단에 몸을 담고 수행정진하며, 교화해 오실 수 있었던 종령님의 철학이나 신념,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나 사상을 떠나 누가 보든 보편적으로 사람으로서 평가하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생활불교를 하는 우리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국 복지쌍수(福智雙修)입니다. 가르침을 잘 배워서 내가 터득하고 그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서는 복이라는 분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현교의 경우 자기 수행으로 지혜를 닦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면, 우리는 지혜와 복을 마치 새의 양 날개처럼 균형 있게 닦아야 합니다.
부처님 법을 행하는 불자로서는 인과의 원리를 알고,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전생업, 금생업 등 업력에서 오는 것을 바로 알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업을 바루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비뚤어진 것은 바르게, 탁한 것은 맑게 하는 것이 ‘정업(淨業)’입니다. 내 업을 맑히는 노력에는 염송정진, 봉사, 불공, 희사 등 여러 방법이 다 해당됩니다. 특히 스승의 입장에서는 법을 전해야하는 사명감과 의무감이 있습니다. 이는 상대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내가 몸소 행해서 실천을 통해서 증득 과정을 거쳐야 힘이 나옵니다. 미사여구로 유창한 설법을 한다해도 전달이 잘안 됩니다. 비록 한두 마디만이라도 내가 실천하고 솔선해서 증득한 힘을 얻어야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스승이나 교도나 모두 끊임없이 노력하는 실천이 긴요하다 생각됩니다.
7. 창종 반세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종단의 백년대계를 위해 스승과 교도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실천에 대해 설해주십시오.
오십을 인간 나이에 비유하면 공자님의 표준으로는 지천명(知天命)입니다.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지요, 과일이나 열매로 보면 성숙, 완숙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단의 성숙도가 나이(50년)에 걸맞는가? 냉정하게 살펴봐야할 때입니다.
저는 대화할 때나 교육시간에 글이나 이론 보다는 평소 생각을 많이 전하는 편입니다. 개인이든 단체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만이 살길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깰 ‘성(醒)’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한자로 닭 유(酉 술, 닭)부와 음(音)을 나타내는 星(성)이 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술에 취해 있다가 별을 보고 확 깨어나듯이 50년이란 좌표를 보고 스승이나 교도 모두 깨어나 혁신해야 합니다. 4, 50년 전의 틀을 깨고, 전통은 살리되 고치고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드립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상에 가장 가까운 결과를 만듭니다.
8. 전 세계가 코로나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불가피한 자연재해나 인재로 점철된 시간이 인간의 역사이죠. 요즘처럼 전 지구가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전염병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고통이지만 진리적으로 보면 이것은 결국 공업의 결과입니다. 과학적으로는 급속한 문명의 발전, 환경 공해, 과소비 등으로 해석하지만 불자라면 법계에서 오는 공업의 업과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불공을 하다보면 ‘적은 고행은 공덕이 적고, 큰 고행은 공덕 또한 크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아실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방식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면 공덕은 반드시 뒤따라 좋은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법계가 주는 반전의 기회라 생각하고 인내와 극복으로 크게 재도약하시기를 서원합니다.
인터뷰=박재원 기자
사진=전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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