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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후 나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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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6-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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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6-03 13:34 조회 2,6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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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연명의료 (35회)

죽은 이후 나는 어디 있는가?
‘죽음준비’는 바로 의미 있는 삶의 준비, 죽음에 순응하는 순간 영혼의 치유 시작

태어난 모든 존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생명의 소멸을 슬퍼하는 것이 삶의 필연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탄생을 기뻐하는 만큼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게 될 때 지난날의 삶에 대한 후회가 휩싸이게 마련이죠. 죽음은 언제나 어디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죽음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찾아올지 아직 정해지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죽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후회 없이 여유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죽음 준비해야 합니다. 

자기 삶을 단숨에 종결짓는 죽음, 그 죽음을 지금까지 얼마나 준비 해왔습니까? 마치 남의 죽음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 준비 없이 황망하게 죽어도 되는 것일까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올 수도 있고 내생이 올 수도 있습니다. 내일과 내생 중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까요? 내일이 먼저 찾아올지 내생이 먼저 찾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죽는다면, 얼마나 황망하겠습니까? 죽음준비는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함으로써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따라서 죽음의 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의미 있는 삶의 준비입니다.

죽음준비 없이 사는 사람은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죽음준비는 마지막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우리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다시 물어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요?

삶의 마지막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여유 있게 떠날 수 있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이며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습니까?

육신이 호흡과 심장박동을 멈추면, 영혼은 3일 반에 걸쳐 육신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이제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있음을 당연히 전제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누구니까? 과연 나라고 부를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죽어가는 육신이 자기 자신입니까?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이 자기 자신입니까? 나는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근거로 삼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죽는 순간 우리의 마음 상태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죽는다면, 우리의 부정적인 카르마에도 불구하고 다음 삶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혼란스럽고 근심에 빠진 상태로 죽는다면, 우리가 그간의 삶을 잘 살았을지라도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기 직전 지녔던 마지막 생각과 감정이 곧바로 이어질 미래의 행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연유로 심리학자들은 죽어가는 순간의 분위기가 몹시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죽음준비 교육은 죽음을 수용하면서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습니다. 

죽음준비를 갖추고 사는 사람은 죽음을 수용하는 시점부터 죽음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죽음에 순응하는 순간부터 영혼의 치유는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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