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최종회>
페이지 정보
호수 26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8-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도경스님의 수행법문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도경스님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8-04 16:27 조회 2,582회본문
‘사람은 죽어도 지혜는 죽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 곧 지혜, 바르게 수행하고 꾸준히 수행하면 수행의 이익 얻을 수 있어
수행하는 사람과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장면 장면에서 무엇을 봐야 하고 어떻게 봐야 하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감옥에 갇혀서 마음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사람입니다.
삶의 한 장면을 생각해봅시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 출근 시간에 만원 지하철을 탔습니다.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립니다. 그에게는 화가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느낌을 그는 불쾌한 느낌이라고 압니다. 마음에서는 화가 여러 가지 불평을 하지 시작합니다. ‘이 지하철은 왜 이렇게 흔들려’ ‘이 여자 핸드백은 왜 이렇게 커’ ‘저 할머니는 잘 걷지도 못하면서 왜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 무슨 할 일이 있다고.’ 그의 마음은 끝없이 바깥의 조건들에 대해서 화를 냅니다. 그는 그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는 그렇게 온전히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같은 상황입니다. 지하철 안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부딪힙니다. 성인이 아니니 그에게도 화가 일어납니다. 그는 그 화를 압니다.
그는 ‘자연의 이치다’라는 바른 견해를 일으켜주면서 화를 바르게 보려고 합니다. 화는 대상이 되면서 더이상 커지지 않습니다. 마음은 부딪히는 느낌을 불쾌한 느낌이라고 압니다. ‘왜 불쾌하지! 느낌일 뿐인데.’ 그는 느낌을 단지 느낌으로 보고자 합니다. 화를 대상으로 보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을 보면서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일어납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고 자신 안에 머물면서 만족합니다. 그는 그때 무엇을 봐야 하고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삶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의 질이 얼마나 다릅니까?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진정한 우리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40년, 어떤 이에게는 50년, 어떤 이에게는 60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긴 세월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시간들의 존재감이 지금 있습니까? 생각해보면 긴 시간을 살아온 것 같은데 그 시간들의 존재감이 지금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과거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 이순간 내게 알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나의 삶은 이것이 있어서 진정 가치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분명한 자신의 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서 어느 순간 죽음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도 한 번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볼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때도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죽음 앞에서도 중요할까요? 죽음은 가식이 통하지 않는 진실한 삶의 순간입니다. 죽음 앞에서 가족이 중요할까요? 죽음 앞에서 내가 지금 고생하며 얻으려고 하는 사회적 지위, 재산이 소중할까요? 건강은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서 이미 건강한 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런 것들이 가치를 가질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절대적 가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의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저의 큰 스승께서는 사람은 죽어도 지혜는 죽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스승께서는 삶의 목적은 지혜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붓다 당시 붓다의 제자들 가운데 지혜가 수승한 제자들은 자신들이 죽을 때를 알고 있었습니다. 죽을 날이 가까이 다가오면 붓다에게 가서 언제 빠리닙바나에 들겠다라고 붓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붓다는 죽음을 앞둔 제자에게 이런 요구를 하십니다. ‘제자야! 내게 법문을 해 다오.’ 그럼 제자는 자신이 수행을 하면서 깨달은 6가지 감각기관의 일어남에 대해서, 대상과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일어나는 것들의 연기성에 대해서 법문을 합니다. 그 법문의 내용은 그가 읽고 들어서 안 것들이 아닙니다. 그가 수행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붓다는 죽음을 앞둔 제자에게 자신이 수행을 통해서 깨달은 지혜를 다시 한 번 떠올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 앞에는 진정 가치 있는 것은 지혜뿐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의 상황을 한 번 생각해봅시다. 몸이 아픕니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합니다. 머리도 멍합니다. 이런 상태를 무방비로 받아들이며 죽어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아픔, 불안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는 고문받으며 죽어가는 것처럼 죽어갑니다. 그가 오랜 기간 수행을 해서 수행의 지혜를 개발해 왔다면 어떨까요? 그는 아픔을 봅니다. 아픔을 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은 아픔과 떨어져서 자유롭습니다. 자유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작용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지혜로 인해 자유로운 자신을 보면서 기쁜 마음이 일어납니다.
불안합니다. 불안하다고 압니다. 불안한 것이 마음일 뿐이다 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상관없이 일어난 마음의 일어남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그런 지혜로 인해 자유로운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멍합니다. 멍하다 라고 압니다. 멍한 것이 자연스러운 마음의 작용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픔과 불안함과 멍함 때문에 동요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의 이어짐으로 인해 나타나는 존재의 한 단면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화롭습니다. 그렇게 평화롭고 자유로운 자신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어서 그의 삶은 진정 의미 있었다고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삶의 진실은 이 순간에 있는 것이고 지혜가 의미가 있는 것도 이 순간 지혜의 작용과 지혜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알 수 없는 것은 진정 의미 있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진정 의미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해가면서 자신에 관심을 가지고 바른 견해로 자신을 관찰해가면서 자신을 이해해갑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 지면 매 순간 알아차림을 하면서 이 지혜를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이 순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를 확인하면서, 지혜로 인한 자신의 자유로움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알아서 기쁩니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삶의 굳건함이 느껴집니다.
수행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바르게 수행하고 꾸준히 수행하면 반드시 수행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자신을 알고서 삶을 이해하면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수행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