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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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10-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생활법문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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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10-05 11:59 조회 2,600회본문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가르침을 듣고 배우고 닦아서 실천하는 종교 ...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바른 수행 통해야 삶이 더욱 윤택해져
부산 정각사 주교 법경 정사가 BBS 부산불교방송 프로그램 「수요법문」(매주 수요일 17시 40분~18시 방송)에서 지난 9월 1일부터 3개월 간 생활법문을 진행 중이다. 본지는 부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법한 법경 정사의 방송 내용을 지면으로 옮겨 13회에 걸쳐 소개한다. 방송은 부산불교방송 홈페이지(http://www.busanbbs.co.kr)를 통해 다시 들을 수 있다. <편집자 주>
불교(佛敎)란 글자 그대로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을 뜻합니다. 불(佛)은 부처님을 말하는 것으로, 산스크리트의 붓다(Buddha)라는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말입니다. 이를 음사(音寫), 음역(音譯)이라 합니다. 그래서 붓다를 불타(佛陀)라고 부르고 한자로도 그렇게 표기를 합니다. 이 불타를 줄여서 불(佛)이라고도 합니다. 불(佛)을 부처라고 말합니다. 부처는 붓다, 또는 불타를 우리말로써 칭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를 ‘님’자를 붙여서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말합니다. 부처, 붓다, 불타의 뜻은 ‘깨달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교(敎)’는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 말씀을 가리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곧 부처님께서 직접 깨달으신 내용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자 깨달음의 내용이 바로 ‘교’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불교라고 하면,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말씀하신 가르침들을 듣고 배우고 닦아서 실천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설하시고 말씀하신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 내용이 곧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란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가르치신 교설, 가르침에 대해 배우고 닦고 행하는, 즉 실천하는 종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를 좀 더 풀어서 말씀드리면, 우주 삼라만상, 즉 이 세상에 대한 이해, 자각, 깨달음을 위해 수행하는 종교입니다. 이 세상 우주 삼라만상을 불교에서는 일체(一切)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체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일체는 산스크리트어로 sarva라고 하는데,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로서 법(法)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일체를 제법(諸法)이라고도 합니다. 삼법인(三法印) 가운데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제법(諸法)이 바로 일체(一切)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설하신 내용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연기(緣起)’의 진리입니다. 연기는 인(因)과 연(緣)이 화합(和合)하여서 일어난다(起)는 뜻으로,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줄임말입니다. 즉 이 세상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로써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일체 존재의 법칙이 바로 연기성(緣起性)에 있음을 깨달으시고 우리 중생들에게 설하신 것입니다. 즉 우주 삼라만상과 인간의 존재와 실체를 여실하게 파악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크게 3가지의 명제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어떤 성질과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며, 셋째는 일체 존재는 ‘어떤 법칙으로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러한 존재의 진리를 설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일체 존재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설하셨는데, 이를 ‘수행교설’이라 하고, 세상 이치에 대한 말씀을 근본교설이라 합니다.
첫 번째는 ‘일체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교설입니다. 여기에는 사대설(四大說)·오온설(五蘊說)·십이처설(十二處說) 등의 교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체의 구조를 설하신 이유는 이것도 세월이 지나면 없어질 것들입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무상게송(無常偈頌) 가운데 ‘사람이 죽으면 뼈와 터럭과 살은 다 땅에 돌아가고, 피와 땀과 진액은 다 물에 돌아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에 돌아가고, 움직이는 힘은 바람에 돌아가서, 사대(四大)가 각각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 역시 인연이 다하면 떠나는 것입니다. 무상한 것입니다.
두 번째 내용으로는 ‘일체 존재는 어떤 성질,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교설로는 삼법인설(三法印說)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입니다. 이 세 가지 진리의 요체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러므로 그것이 고통이라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설하신 가르침의 핵심은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고 무아인데, 무상하고 무아인 것에 뭣하러 집착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집착마저도 무상한 것입니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집착일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일체는 어떤 법칙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교설로서 일체 존재의 법칙성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일체 존재의 법칙성은 바로 연기(緣起)로써 존재한다는 교설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불교란 바로 일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일체는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체는 어떤 법칙으로 존재하는가를 이해하고, 이를 내재화하기 위해 수행하고 실천하는 종교가 불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란 ‘부처님께서 일체존재의 진리를 직접 깨달으시고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무명번뇌와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설하신 말씀, 진리의 가르침을 우리 중생들이 듣고 배우고 행하는 종교’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천이 곧 불교의 수행입니다,
수행은 실천을 바탕으로 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 가운데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무상(無常)의 진리입니다. 무상(無常)이란 없을 무(無), 항상 상(常)자의 글자로서 항상(영원함)이 없다, 항상 그대로 있지 않다는 것으로, 일체는 생명변화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하는가? 그것은 곧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 즉 연기(緣起)로써 변한다, 연기로써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원인에 따라 결과가 일어나므로, 모든 것은 항상 변합니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원인은 또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생멸변화는 끝없이 펼쳐집니다. 즉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써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없음으로써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는 연기의 사구게(四句偈)가 바로 연기의 내용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라는 연기의 진리 속에 존재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갈등과 대립, 슬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또한 잠시 머물러 있을 뿐, 모두 무상한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일체 고통마저도 무상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통과 괴로움이 끝이 없다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고 고통 속에서 헤쳐나오질 못합니다. 어제의 슬픔에 오늘까지도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세상 모든 슬픔과 고민도 무상하며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주 속에서 한낱 티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과민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고통을 객관화하고 최소화해서 티끌로 날려 보내야 합니다. 기쁨이나 슬픔, 괴로움과 고통, 근심과 걱정 속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함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상의 진리를 비롯하여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설하신 말씀은 한낱 경전의 책장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삶과 일상생활의 이야기입니다.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바른 수행을 통해서 삶이 더욱 윤택해집니다. 그 수행은 부처님의 가르침, 말씀, 교설의 진리를 배우고 닦아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요, 올바른 불교 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무상의 진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순간이 찰나로서 지나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무상과 무아의 진리는 내가 숨 쉬고 있는 동안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저의 목소리도 시간이 지나면 없어집니다. 그 어디에도 있지 않습니다. 단지, 녹음(錄音)되어 전해지고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삭제하면 없어질 것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스스로 너무 힘들게 만들지 마십시오. 무상과 무아라는 진리 속에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무상이 마음속에 스며들 때 평온이 찾아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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