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장과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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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8-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법장담론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8-06 15:02 조회 442회본문
그동안 선밀쌍수, 혹은 선밀겸수에 대해 화제를 지속한 것은 선과 밀교의 긴장을 해소해 보려는 심산이 작용한 탓이다. 경허선사의 항마진언은 선수행시 발생할 마장을 물리치는 불가피한 방편이었고, 조선시대 전쟁과 전염병이 일상이었던 시절에는 무명무주의 고혼을 천도하는 것은 선사들이 맡은 일상사였다. 선밀쌍수 못지않게 중요한 말은 선정장(禪定藏)인 것 같다. 천수경[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陀羅尼經]에는 다라니는 지송하는 자에 대해, “이 사람은 선정장이니 백천 삼매가 항상 현전하기 때문이다[當知其人是禪定藏 百千三昧常現前故]”라는 경구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선정장은 대비다라니 송주에 한정된 수식어 가운데 하나이다.
민영규 소장본 <범서총지집>에 599종의 다라니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의 서문에도 선정장의 용어를 인용하고 있다. 서문을 쓴 작자는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전적을 해박하게 인용한 것으로 보아 당대 학식 높았던 최고의 아사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문의 내용은 크게 다라니의 수승함과 다라니를 통해 선정에 드는 관행에 대해 설한다. 서문에서 인용한 선정장은 ‘다라니모음집’ 정도의 의미가 있지만 보다 깊은 의미를 헤아려 보면 선사들이 다라니의 염송을 통해 누리는 삼매의 마당이라는 뜻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범서총지집>의 시작은 해인사본의 경우 소실지진언·입실지진언·출실지진언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실지는 다라니의 염송을 통해 성취하려는 불사나 삼매를 가리키며 나아가 불신(佛身)을 포함하기도 한다.
민영규본 <범서총지집>에는 실지를 법신진언·보신진언·화신진언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김수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해인사본은 의종 년대(1156-1166)대 출간되었고 민영규본은 고려 고종(高宗) 5년(1218)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양 판본의 시대적 차이는 크지 않다. 여기서 실지의 해석을 두고 약간의 논란이 벌어진 사실을 제대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서문에는 계부선사(契符禪師)가 선정장을 최상승선이라 했으며 연수선사(延壽禪師)는 25도 진언으로 중생을 구하도록 했다고 한다. 여기서 실지와 삼신간의 관계가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진(道㲀)의 <원통성불심요집>에서 한 선객이 지금의 선자들이 다라니 지송을 허락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자 도진은 <전등록>에서 용수보살을 서천축 제14조로 삼고 준제진언을 선양한 것과 일행선사(一行禪師), 지자선사(智者禪師), 계부선사의 사례를 들고 있다. 도진의 활동시기를 고려하면 다라니에 대한 선사들의 거부감이 요송시대 이미 존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화성 봉림사 아미타불좌성 복장에서 나온 <범서총지집>의 경우 그 간행에 고려 수선사(修禪社) 혜심(慧諶)이 관여한 것으로 보아 선사가 다라니를 배척한 것을 일상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조계고승전>은 조선 후기 활동했던 보정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계종 승려들을 기록한 전기이다. <조계종사대붕선사전>에는 대붕선사(大鵬禪師)의 기록이 있다. 선사는 속성이 김(金)씨로 순천 주암 출신이며 헌종 7년(1841)에 태어났는데, 13세 출가하여 우담(優曇)의 강석에 참문하여 경전을 배웠고, 침룡선사(枕龍禪師)에게서 선을 받았다고 하였다. 어지러운 시대였지만 선교(禪敎)가 여전히 온전했음을 알 수 있다. 전기에는, “선사는 범자학(梵字學)에 능통하였고 주련과 다라니에 대한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흔쾌히 곧바로 붓을 들었지만 한자(漢字)를 써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한 번도 붓 잡는 것을 수락하지 않았다. 또한 시율(詩律)의 경우에도 기뻐하지 않았으니, 실로 본색납자(本色衲子)의 본분이라 할 만하였다”라고 하였다. 필력이 있으면서 다라니를 펴는 것을 선자의 본분으로 알고 승려의 시문을 부끄러이 여겼으니, 조선시대 현밀쌍수가 온전했던 대붕선사의 기록이 소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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