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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식의 존재 증명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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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11-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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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11-05 14:57 조회 2,67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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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심뽀이야기 (24회)

7식의 존재 증명하기 <1>
유식설, 말나식, 아뢰야식을 더해 인식 주체를 8가지로 ... 집기(集起)-심(心), 사량(思量)-의(意), 요별(了別)-식(識)

부파불교까지는 식을 여섯 가지(前5識과 意識)로 나누었지만 인식의 주체(識體)는 ‘하나’라고 보았다. 그러나 유식설에서는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두 가지 식을 더하여 인식의 주체를 여덟 가지로 설정하였다.


부처님께서 곳곳의 경전에서 심(心)·의(意)·식(識)에 대해 세가지 별도의 뜻을 말씀하셨다. 집기(集起)를 심이라 이름하고, 사량(思量)을 의라 이름하며, 요별(了別)을 식이라 이름한다. 집기는 ‘모아서 일으키다’는 뜻이고, 사량은 ‘헤아리다’는 뜻이고, 요별은 ‘분별한다’는 뜻이다. 대승경전인 『능가경』에는 장식을 말하여 심이라 이름하며, 사량의 체성을 의라 이름하고 능히 모든 경의 모습을 요별하는 이를 말하여 식이라 이름한다. 


말나식은 아뢰야식과 같은 심층심리로서 삼계를 윤회할 때나 어떠한 극한 상황에 처할 때라도 그 작용이 단절되지 않고 언제나(恒) 깊게(審) 사량하기 때문에 사량식이라 한다. 

요컨대 인식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차이점은 아뢰야식은 미세하거나 분별이 없으며 저절로 행해지는 데 반하여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인식의 대상으로 하여 깊고 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강렬하고 집요한 자아의식, 즉 자기에 대한 강한 집착심을 갖는 것은 강하고 끈질긴 제7말나식이 제8아뢰야식을 집착하기 때문이다.

제6의식과 제8아뢰야식 외에 제6의식 밑에서 작용하는 심층심리이며 자아의식인 말나식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논서에서는 두 가지 경증(經證)과 여섯 가지 도리로써 증명하고 있다. 이것을 ‘말나의 이교육리(二敎六理)’라 한다.


먼저 두 가지 교증(敎證)은 “장식(藏識)을 심(心)이라 하고, 사량하는 것을 의(意)라 하며, 모든 경계의 대상을 분별하는 것을 식(識)이라 한다(藏識說名心. 思量性名意. 能了諸境相. 是說名爲識)”고 한 것이 그 첫 번째의 교증이다. 이 경문에 의거하여 보면 심이라는 것은 장식, 즉 제8아뢰야식과 여러 가지 경계를 분별하는 식, 즉 제6의식 외에 思量性을 가지고 있는 意라는 식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사량성을 가진 식이 제6의식이 아니라면 이것은 분명히 제7말나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또 『해탈경』에 ̒염오의는 항상 여러 가지 번뇌와 함께 생멸한다. 만약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면 염오의는 영원히 사라진다(染汚意恒時. 諸惑俱生滅. 若解脫諸惑. 非曾非當有.)’고 한 게송이 두 번째의 교증이다. 


​경에서 이 게송을 해석한 것을 보면 ‘염오의는 영원한 과거로부터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 생멸한다. 네 가지 번뇌는 아견․ 아애․ 아만․ 아치이다. 다스리는 도(對治道)가 생하여 이 번뇌를 단절하고 나면 이 의는 대치도로부터 곧 해탈한다(有染汚意從無始來. 與四煩惱恒俱生滅. 謂我見我愛及我慢我癡. 對治道生斷煩惱已. 此意從彼便得解脫.)’고 게송의 뜻을 스스로 해석하고 있다. 이때 이 의(意)와 상응하는 번뇌는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미래에도 없다. 항시 4번뇌와 함께 하는 식은 제7식을 제외하고 생각할수 없다. 따라서 경에서 말하는 염오의가 바로 제7식을 나타낸다. 즉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 활동하는 것이 제6의식의 특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명백히 제7말나식을 말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또 제7식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경전의 말씀을 근거로 여섯 가지로써 증명하고 있다. 이것을 육리증(六理證)이라고 한다. 이 육리증은 우리의 마음속에 말나식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① 제1이증: 不共無明證- 항상 불공무명과 함께하는 식 -이란 “불공무명은 미세하게 항상 활동하면서 진실을 가린다. 만약 이 식이 없다면 불공무명은 마땅히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不共無明. 微細恒行. 覆蔽眞實. 若無此識. 彼應非有.)”라고 한 것이 불공무명증이다. 

무명은 어리석음으로 심소법에 해당된다. 심소법은 홀로 일어날 수 없다. 반드시 심왕(心王)인 식(識)과 함께 일어난다. 또 불공이란 자신에게만 있는 것을 말한다. 

즉 불공무명은 불공무명과 상응하는 그 식(識)에게만 있고 다른 식에는 없다. 그렇다면 이 불공무명과 함께하는 식왕(識王)인 식은 무엇일까?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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