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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과 삶이 하나되는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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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3-18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특별기고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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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목정배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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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3-31 11:53 조회 5,3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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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침과 삶이 하나되는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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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깨침의 종교이다. 깨침은 일체의 미망에서 환하게 되는 세계 이다. 미망이 가득차 있으면 혼미가 전횡하게 된다. 미망처럼 무섭고 무 지한 것이 없다. 우리들 주변에는 미 망한 것이 뒤엉켜 표류하고 있다. 표류하는 미망에 부딪치면 부셔지지 않는 것이 없다. 미망은 암초와 같고 빙하와 같은 것이다. 항해하는 배가 빙하를 만나거나 암초에 걸리면 난 파하거나 침몰하여 버린다.

바다에 빙하와 암초가 없을 때 순 항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항해사는 평 온한 바다를 희구한다. 이것은 항해 가 순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깨침의 종교인 불교에도 미망의 암 초나 빙하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중 생들은 마음속에 무한한 미망을 품 고 있다. 이 미망이 바로 생활적인 마음이라 생각하고 이것으로 말미암 아 하루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서 육식하는 마음버릇 을 고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고기 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라 마 음의 미망이 가득차 있으면 그것이 육식의 비린 행위라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생을 하 고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도리어 그 들을 해치려 하고, 성미가 나빠 욕심 많고 난폭하며 무례한 사람들 이것 이 비린 것이지 육식은 그렇지 않 다]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맛있는 것을 탐내고, 부정한 생 활에 어울리며, 허무론을 가지고 바 르지 못한 행위를 하는 완고하고 어 리석은 사람들, 이것이 비린 것이지 육식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 는가. 현재적 자기만을 위하면서 생 활을 하는 것이다. 즉물적 생활이 만 족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겸양이나 양보가 없다. 겸양을 하는 것은 손해 를 보고 양보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 위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내가 이겨 야 하고, 언제든지 내가 독차지하여 야만 한다고 억지와 고집을 부린다. 그러므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고, 빼앗고, 상해하고, 난폭과 무례로 서 상대를 괴롭힌다. 괴롭힌다는 생 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이 생활의 전부라고 점지하고 있으므로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고통 을 감응하거나 상응하는 교감이 있 다면 그와 같은 행위는 사람으로서 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탐닉한 비행, 흉폭한 야만 성을 내함하여 그 의식을 적절하게 작용하면서 극도의 고통을 부하 하 게 한다. 이것은「비린내J나는 행위 이다. 음식물에서 비린내가 나면 쉬 이 제거할 수 있지만 마음의 비린내 는 오래도록 제거되지 않는다. 우리 는 마음속의「비린내」를 멸진시켜야 한다. 욕망의 억제, 미탐, 부정, 허무 주의, 우치 등 이 모든 것은 마음속 에서 생성되는「비린내J이다. 이 비린 내를 나로부터 탈각시키고 탈진시키 는 마음공부를 하여야 한다.

 불교가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그 러나 불교를 달라지게 할 필요는 없 다. 불교는 깨침의 종교로서 표방된 진리이다. 깨침은 변이, 변질, 변화 할 수 없는 것이다. 깨침은 항상 밝 고 환하게 우주의 빛으로 변만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달라져야하고 사람이 개혁 되어야 한다. 사람은 옛날과 같이 똑 같은 비린내를 갖고 있으면서 깨침 이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본질 을 말소시키려는 미망의 소행이다.

한국 불교인은 날마다 사찰에서 기도와 참회를 한다. 발원적 신행도 앞서고 있기는 하지만 혹자에게는 기복적 행태로서 기도와 업장소멸을 염원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한국 불교인은 개인적 신앙 에는 투철하지만 사회적 정의를 실 현하는 방면에는 무관심한 경우도 , 있다. 사실 인간은 자기로부터 시작 한다. 그러나 그 자기 옆에는 이웃과 사회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여야 한다. 이 사회에 깊은 관심을 쏟아 넣는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 대사회 적 상관관계가 결여된 신앙은 개인 소득을 증장시키는 일밖에 하지 않 는다.

이제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깨 침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볼 기회 를 가져야 한다. 깨침은 중생의 삶을 빛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임을 자각하 여 나가는 것이다. 미망, 무지, 탐애 가 밤에 활동하는 암흑한 무명흑점 이라고 하면 깨침은 밝음의 한복판 에서 일체중생을 두루 비추는 한낮 의 광명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한국 불교는 깨침이 원력이 되고, 기도가 되는 신앙으로 전향되어야 한다. 이 렇게 변화하는 불교인이 되면 깨침 과 삶이 하나가 되는 성스러운 불교 로 자리 매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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