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지종의 모태—실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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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3-18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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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3-31 12:49 조회 5,552회본문
총지종의 모태—실지사
총지종의 창종과 함께한 유서깊은 밀법도량
총지종의 창종과 함께한 유서 깊은 밀법도량 주택가가 밀 집한 미아동 산기슭에 원만무애의 상징인 구상을 머리에 이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밀법도량이 있다. 원정 종조께서 창종과 더불어 처음으로 교화의 발을 내디디셨던 성북 선교 부로부터 출발하여 오늘의 총지종이 있게끔 산실의 역할을 한 실지사. 원정 종조님의 숨결이 배인 실지사의 옛모습을 더 듬어 보고 그 활동을 살펴 본다
실지는 성취를 뜻해 창종과 함께 본사 역할을
지하철 4호선 미아역에서 내려 동 풔 기슭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주택 가 한가운데에 원만무애의 상징인 구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총지종의 산파 역할 을 했던 성북 선교부의 후신인 실지 사이다. 실지라는 말은 범어의 Siddhi라는 말을 음역한 것이다. 이것은 성취, 또는 묘성취라고 번역되는데 흔히 성취실지, 실지성취라고 말해지며 특히 밀교에서는 진언을 독송하므로서 성취하는 묘과를 뜻한다. 대일경소에는 정각을 완성 한 자리를 무상실지라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실지라는 말은 이렇게 숭고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실지사는 비록 작은 사원이지만 만만찮은 분위기가 느껴진 다. 여기에서 병고를 해탈한 사람들 이 많이 나온 것도 우연은 아닐 것 이다.
불기 2516년(서기 1972년) 12월 24일 원정 종조께서 상봉동에 서울 선교부 개설과 함께 총지종의 창종을 선포하신 후 곧바로 이듬해인 5 월 1일 종암동으로 거처를 옮기시며 성북 선교부로 개칭했으니 이것이 바로 실지사의 전신이었다. 총기 4년 10월 29일 전국 선교부의 명칭을 일 제 정비할 때에 성북 선교부도 실지사로 개칭하게 되었는데 원정 종조 께서 우리의 진언 공덕이 속히 성취 되어 밀법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염 원하시는 띗에서 특별히 실지사로 명명하신 것이었다. 원정 종조께서 우리 총지종의 오늘이 있도록 웅대
한 이상을 펼치시며 정진하시던 곳 이 바로 이 실지사에서 였던 것이다.
창종 초기에는 통리원의 모든 업 무도 여기에서 이루어졌으며 역경과 경전 편찬 및 의궤의 발굴 정비도 실지사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런 뜻에서 실지사는 명실상부한 총지종 의 모태가 되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실지사는 총기 11년 수유동 으로 옮겼다가 총기 15년 미아동 현 재의 위치로 다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실지사가 이 곳으로 옮겨 올 당시 만 해도 제법 눈에 잘 띄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동안 주위에 높 은 건물이 많이 들어서 처음 찾아오 는 사람들은 상당히 애를 먹는다. 도 심포교라는 차원에서 주택가의 대형 가옥을 매입하여 서원당으로 개조한 것인데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어 교화 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 않을까하 는 우려도 든다. 아직까지 일반 사람 들에게는 기와 지붕의 한식 건물만 이 사찰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 에 우리 총지종의 경우에는 그런 면 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사원의 장엄문제도 진지하 게 고려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지사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늑한 정원이 우선 마음 을 푸근하게 한다. 오래된 수목들이 여름에는 그늘을 지어주고 겨울에는 자칫 삭막해 질 분위기를 한결 부드 럽게 해준다. 원정 종조께서 늘 말씀 하시던 도심내의 도량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실지사에 가면 누구나 친절하게 대해 주지만 항상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 중의 한 분이〈정화 엄마)이다. 실지사 주교이신 심인행 전수님의 출가한 큰 따님으로 마침 집 이 가까이 있어 보살님들의 공양준 비는 물론 경내 청소며 스승님 수발 도 들고 자질구레한 절살림을 도맡 아 하신다. 특히 꽃꽂이솜씨가 좋아 불단 장엄을 혼자 도맡아 한다고 한 다. 미소를 머금고 항상 환희한 마음 으로 일하는 보살님을 보면 관세음 보살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층 공양처를 지나 이층 서원당으로 올라가니 첫느낌이 안방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늑하여 도심포교당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서 원당으로 쓰기에는 약간 좁은 것이 흠이다. 일찍이 증축을 했어야 할 곳 인데 좀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도량 안의 분위기는 너무 나 진지하다. 총지종의 창종 당시부 터 함께 해온 보살님들이 가장 많은 곳 중의 하나가 이 실지사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보살님을 붙들고 얘기를 나눠보아도 정말 공부를 열 심히하고 실천하시는 보살님들이라 는 느낌이 든다.
스승님의 설법 또한 보통이 아니 다.
올해로 일흔이 되시는 심인행전수님은 젊은 시절부터 밀교 와 인연을 맺어 원정님을 가까이에 서 모시며 공부하신 공덕이 설법으 로 나타난다. 인자하고 대범하심은 물론 박식하고 견해가 바르시므로 설법도 언제나 정법을 강조하고 보 살들의 지혜 개발에 중점을 두므로 서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도록 이끄 신다고 한다. 많이 배우는 것만이 능 사가 아니고 하나를 배우더라도 실 천하는 것이 최고라고 설법하시는 심인행 전수님은 정확하고 책임감이 있기로도 유명하시다. 노령에도 불구 하고 보살님이 급하게 도움을 청하 면 밤 한시든 두시든 상관않고 홑저 고리 바람으로 달려나가서 어루만져 주신다고 한다. 시간이 나는대로 서 예 지도도 하고 글씨를 써서 나누어 주기도 하시는데 음식과 바느질 솜 씨 또한 뛰어나서 틈나는 대로 주위 에 공덕을 베푸신다. 수행자로서 자 기 관리도 철저하여 일흔의 연세에 도 아직 내의를 입지 않으신다고 한 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철저한 수행 이 엿보이는 이 시대에 보기드문 참다운 수행자라 할 만하다. 재가 수행 자로서 이렇게 훌륭한 스승들이 계 신다는 것이 우리 총지종의 자랑이 라 아니 할 수 없다.
실지사는 교도들이 창종과 더불어 함께 하신 분들이 많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훌륭하신 스승님의 지도로 교도들 사이의 화목이 그 어느 사원 보다도 월등하다. 경조사에는 모두가 자기 일 같이 참여하여 기쁨을 배가 하고 슬픔은 나누어 갖는다. 뿐만아 니라 소문없이 보시행도 많이 하고 있다. 교도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불우 가정의 자녀들을 돕기도 하고 장학금도 지급하며 동네의 극 빈자들에게 물질적 보시도 아끼지 않고 있다. 연꽃마을 등에서 가지고 온 세탁비누등을 팔아 이웃을 돕기 도 하고 각종 봉사단체에 성금지원 도 열심히 하고 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런 활동들을 오랜 기간 소문 없이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 흐뭇하다.
이러한 바깥으로의 활동 뿐 아니 라 심성 정화를 위한 활동도 그 어 느 사원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 다.
서예교실이 그 중의 하나인데 매 주 금요일에 일층 공양처에 모여 붓글씨를 지도 받는데 벌써 칠년째가 되었다고 한다.' 글씨를 배우러 왔다 가 제도된 사람들도 있는데 앞으로 는 서예교실도 더 개방하여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참여하게 할 것이라 한다.
실지사는 그야말로 도심포교당으 로서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 화)를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 금강도 량인데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도 량이 너무 협소하고 노후하여 교화 에 지장이 많다고 한다. 특히 자성학 교의 경우에는 장소가 마땅하지 않 아 애를 먹는다고 하는데 바쁜 공직 생활에도 불구하고 10여년 동안 매 주어린 불자들을 지도하는 정태우 각자님에 의하면 여건만 어느정도 갖추어 지면 자성학교가 크게 발전 할 수 있음에도 충분한 장소를 제공 해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고 한다. 실지사의 증축이나 개축은 상당히 시급한 것 같다. 실지사의 신 정회 회장인 실천제보살에 의하면 “요즈음 사람들은 내실보다 도 외형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 초 심자들을 상대로 교화를 할 때는 사 원의 장엄도 필요하며 밀교적 특색 이 강조된 큰 사원의 건립이 필요한 대 우리 실지사야 말로 하루 빨리 개축이 되어 강북의 중심도량으로서 자리잡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원 정님의 각별한 정이 서린 실지사에 그동안 종단에서의 관심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원력 을 세우고 더욱 정진하면 새로운 도 량을 가지게 될 날도 멀지 않을 것 이다.
또한 실지사의 모든 교도들이 화 합 단결하면서 육바라밀 실천을 생 활화하며 정진에 열심인 이러한 모 습이 널리 알려지고 다른 사원의 본 보기가 되어 교세가 더욱 발전한다 면〈후싸주)라 이름붙인 원정 종조 님의 깊은 뜻이 헛되지 않으리라.
심인행 대전수는 속명이 박광자이며 경 주 동방동 유서깊은 가문에서 태어나 사대부 집안의 규수로 서 갖추어야 할 법도와 예의 범절을 익히고 일찍이 일본으 로 건너가 신식 교육을 받았 다.
이후 가정을 꾸미고 다복한 생활을 누리던 중 뜻하지아니한 병고에 시달리게 된다. 친정어머니로 인하여 밀교에 인 연을 맺게 되고 옴마니반메훔의 지송 공덕으로 병고해탈을 하므로서 밀법의 오묘함을 깨닫고 49세 때에는 총지종의 전수로서 교화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창종 초기 실지 사에서 원정 종조님을 시봉하면서 총지종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일조를 했으며 사회부장, 원의회 의원, 종의회 의원과 재단 이사등을 역임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말보다는 먼저 몸으로 실천을 보여주고 매사에 정확하며 책임감이 투철하여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말을 좌우명 으로 삼아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서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총지종의 역사와 함께 길이 기억되어야할 훌륭한 스승중의 한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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