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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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2-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칼럼리스트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2-11 13:28 조회 2,158회본문
‘극락정토는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없다’
수행과 실천을 중시하는 참여불교 주창
베트남(월남, 越南)은 중국 대륙의 동남쪽에 위치하여 동북쪽에 위치한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위치한 지역을 인도차이나 반도라고 하는데 인도 문명과 중국 문명이 교차하는 지역임을 지명으로 알 수 있습니다. 태국에서 라오스와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중국보다는 인도 문명의 영향이 더 강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남방 불교가 전파된 지역으로 중국을 거쳐 성립한 북방 불교는 베트남 북부지역에 국한됩니다. 월남의 월(越)은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중국의 고사에서도 보이듯 양자강 남쪽에 거주하던 종족이었다가 한족(漢族)에게 밀려 이들 중 일부가 지금의 베트남 북부로 이주하였습니다.
한(漢)무제 때 고조선을 멸하고 만주와 한반도 북구에 한사군을 설치한 것처럼 베트남 북부에도 한군현이 설치되었습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더 오래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완전한 독립은 10세기경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남부지역까지 영토가 확장된 것은 11세기부터 시작하여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1885년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서구 열강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인도를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대립하다가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이 인도 전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영국에게 인도의 지배권을 빼앗긴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화한 것이죠.
서구열강은 계속해서 동북아시아로 진출하였는데 이 지역은 그들의 대외 팽창의 마지막 지역이었습니다. 그만큼 서구열강은 힘을 많이 소진한 상태였는데, 때마침 근대화에 들어선 일본을 앞세워 동북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으려고 합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조선은 베트남과 달리 서구열강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1910년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죠.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자연스럽게 연대하였습니다. 베트남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호찌민과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서로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는 독립 이후 타의에 의해 분단되었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는 고대에서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1일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는 미국에 유학하던 중 1965년 베트남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반전운동을 전개하여 남베트남에서 추방되었고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된 이후에도 배척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외에서 베트남 난민들을 구제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프랑스에 플럼빌리지(Plum Village, 매화 마을)라는 수행 공동체를 설립하여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펼쳐왔습니다. 틱낫한의 틱은 석(釋), 낫한은 일행(一行)의 베트남 발음입니다. 틱낫한 스님이 출가한 불교 종파는 임제종(臨濟宗)으로 우리나라의 조계종의 법맥과 같습니다. 베트남어가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로마자로 표기하기 이전에는 베트남도 한자 문화권이었기에 베트남 북부의 불교는 대승 불교권에 속했던 것이죠.
베트남 불교는 틱낫한 스님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수행과 실천을 중시하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를 주장하였는데, 현재를 중시하는 특징은 임제종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는 임제 선사의 ‘수처작주(隨處作柱)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가르침의 현대적 변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수처(隨處)는 ‘지금 여기’이고 작주(作主)는 배타적 주인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유연하게 적응한다는 의미로 주변과 융화한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면 곳곳마다 참다움이 드러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틱낫한 스님은 ‘극락정토는 지금 당장이 아니면 영원히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미래의 구세불(求世佛)은 공동체를 통해서 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공동체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승가(僧伽)를 듭니다. 부처님은 좋은 도반(道伴)과 함께하는 것이 불교의 전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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