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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 소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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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7-04-17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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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정 필자소속 화음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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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7 19:45 조회 4,7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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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 소면의 길
탐·진·치가 업장형성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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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화음사 주교


업장이란 마음의 막힘이다.

마음이 형체도 없는 장애물에 가려서 바르게 보지 못하고 바르게 듣 지 못하여 일을 망치고 하는 일마다 손해를 보며 죽음을 자초하기도 한다.

우리가 눈 앞이 가로 막히면 보지 못하며 귀가 막히면 듣지 못한다. 이 처럼 우리 마음도 가리운 것이 있으면 자연히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눈 앞이 판자로 가려지고 귀는 솜으로 막아 지지만 마 음은 무엇이 있어서 가려 막는 것일 까?

눈 앞의 판자나 귀의 솜은 치워 버리면 곧 볼 수도 있고 들을 수가 있지만 마음의 장벽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치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마음을 가로 막는 장벽의 요소는 소다음의 세가지로 볼 수가 있다.

첫째, 탐-진-치 삼독업이다.

탐심이 한 번 마음을 가로 막으면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예의도 이웃도 모른다. 이 욕심이 한 번 막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고 남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바르게 가르치고 충고하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업장에 막혀 삼악도에 빠져드는 것이다.

다음이 진심이다. 별것도 아닌 것이 마음에 거슬리고 진심이 나서 화를 참지 못하고 일을 글치거나 상대람은 큰 화를 입혀서 낭패를 당하게 된다. 짐심이 본 마음을 가려서 받는 고통이다. 

다음이 치심이다. 어리석음에서 오는 장벽이다. 어리석음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혀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시비 이해를 구분할 수 없는 장벽이 있도 또 하나는 조금은 알아서 자기가 아는 것에 매여 그이상의 것이나 그 밖의 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장벽에 막혀 옳은 것도 믿지 않고 좋은 것을 가르쳐 주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칭 학식도 많고 말도 잘 하 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외의 것은 아무리 좋은 진리나 방편도 부정하고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또 어리석은 마음은 자기의 과실은 알지 못하며 자기 고집에 매여 좋은 법문을 들어도 희열을 느끼지 못하며 인과응보의 진리를 믿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말이나 꼭 해야할 일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둘째, 차별심이다.

이 업은 사람과 미움이 가로막아 생기는 장벽이다.

나에게 아부하고 굽실거리는 사람은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어도 잘못 으로 보이지 않으며 나쁜 허물도 좋 게 보인다.

하지만 미운 사람이나 배타적인 사람의 잘한 일은 잘 보이지 않고 오히려 허물로 보고 실수나 잘못한 일만이 눈에 발견되어 갈수록 죄업 을 두텁게 하는 장벽이다. 그래서 옛 말씀에 “좋아하되 그 허물을 알아야 하고 미운 사람도 지금 그가 지은 착한 바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셋째, 숙세업이다.

전세업보에 가려서 정당하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업장이다

이 업은 금생에 지은 것이 아니라 전생에 지은 것이 금생에 넘어 온 것이다. 숙세의 업장이 가리게 되면 눈에 보이지를 않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러한 모든 업장은 꾸준히 닦아 가면 비록 지금은 괴롭고 잘 안되지만 행동 하나 마음 하나가 그대로 선업을 이루어 수행자의 인격을 이루어 언젠가는 업장을 소멸할 수 있 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도를 생각하고 도를 말하고 도를 행하라”고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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