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의 중생들을 모두 건지고 즉신성불의 대도를 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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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5-10-16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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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3-29 09:34 조회 4,198회본문
정순하고 완벽한 밀교의 비법을 체계화 하다
종조의 속성은 일직손씨이고 휘는 정우이며 법호는 원정이다. 1907년 1월 29일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에서 탄생하셨다. 천품이 영민하시고 불요불굴의 의지와 정의감, 발군의 기지와 고매하신 인품의 대기로서 훗날 이 나라의 현대 밀교사의 첫장을 여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신다. 교남 화벌의 좋은 가문에 나셔서 유시에 사서를 통습하셨으며 일람첩기의 천재성을 타고 나셨으므로 한번 듣고 보신 것을 결코 잊으시는 일이 없으셨다. 탁월하신 문필력과 더불어 주역과 사서에도 조예가 깊으셨던 종조께서는 일찌기 개화의 물결을 타고 현대고등교육을 마치시자 일시 관계와 교육계에 종사하시다가 불교에 뜻을 세우시고 조선팔도는 물론 만주, 중국등지를 편력하시면서 불경의 수집과 연구에 몰두하셨다.
625로 호국불교를 통한 구국도생의 대비원을 발하다
그러시던중 성풍혈우의 6-25를 만나면서 동족상잔의 처절한 참상과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목격하시고 호국 불교를 통한 구국도생의 대비원을 발하셨다.
대서원을 발하시고 정진중이시던 성사께 홀연히 이심전심으로 다가온 대덕이 있었으니 그분이 곧 진각종의 개조이신 회당조사였다. 그 분께서도 얼마전에 진각종을 개교하셨으나 일인지력으로는 불급이라 불교에 조예가 깊고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대덕을 만나지 못해 애태우시던 중 원정 대종사를 만나므로서 바야흐로 종단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불교를 국교로 했던 고려국을 끝으로 사라져버린 밀장! 그 밀장의 비법만이 이 나라를 구출하고 이민족을 실의와 좌절로부터 건져낼 수 있다는 확신과 신념으로 종단을 이끌어오기 십여년, 두 분 성사의 합심 협력으로 신생 종단으로서의 진각종의 발전은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회당조사와 진각종창종
그러나 1963년 10월! 한국밀교 중흥의 거대한 이상이 미처 결실을 보기도 전에 회당 조사 께서 62세의 짧은 일기로 열반에 드셨으니 이 나라의 밀교발전에 잇어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원정성사께서 진각종의 총인직을 맡아 종단을 이끌어 오시면서 만인의 존경과 흠앙을 한 몸에 받으시며 밀교종단으로서의 진각종을 반석위에 올려놓으셨다. 총본산을 대구에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현 진각종 본산)으로 옮겼으며 종조전을 건립하고 찬덕비를 세워 스스로 비문을 지으시고 글씨도 써 회당조사의 업적을 기렸던 것이다.
원정성사의 영도로 진각종도 나날이 발전했으며 장장 이조 오백년간 빛을 잃고 인몰했던 밀교도 기나긴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잊혀졌던 비법고 경궤, 다라니와 수법등이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일본밀교와의 교류도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인도, 중국, 티벳의 밀교도 그 자태를 하나둘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 밀교도 이제 스스로의 내부와 주변을 다시 한번 돌이켜 냉철한 이성으로 성찰해 보아야 할 때가 왔던 것이다. 밀교는 의식을 중요시하며 사교 이상이 분명하고 정확해야 하며 인계와 진언을 비롯한 소위 밀교의 비법 의궤는 그 조직 과 체계를 매우 엄격히 해야한다.
진각종총인직 맡아 교상을 반석위에 올려 놓다
창종이래로 진각종내의 모든 역경이나 저술을 비롯하여 교상판석과 사교이상의 정립을 오로지 혼자 해 내셨던 박학다식의 원정대성사! 성사께서는 당신께서 모든 정성을 다 바쳐 가꾸어 온 진각종의 교상과
사상가운데 불합리하고 불명확한 점은 굳어지기 전에, 또한 당신의 얼마 남지 아니한 여생이 끝나기 전에 하루 속히 보완하여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불철주야로 그 준비를 하셨던 것이다.
1971년, 마침내 이 숙원의 대업에 착수했으나 애석하게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성사를 따르고자하는 대부분의 승직자와 교도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밀교에 생소한 일부 회당개조 친척들의 종교외적인 곡해로 인하여 정법을 세우시려던 열망은 그 결실을 보지 못하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이에 성사께서는 당신께서 근 이십여 성상 심혈을 기우려 키워 오신 진각종을 개조입멸 불과 십년에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는 없다고 개탄하시고 그해 12월에 진각종 입사 이십여년의 한을 달래며 총인직을 비롯한 모든 종직의 사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회당성사의 영전에 석별을 고하고 전각종의 가람을 떠나시었으니 그때의 심정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정법을 펼친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우며 장애가 많더란 말인가? 미혹한 중생들은 어찌하여 엇길로만 가려고 하는가?
종단의 동요를 막기 위하여 종적마져 감추시었으나 일생을 걸고 중생구제의 대비원을 세우셨던 그 불퇴전의 의지야 어찌 그로서 끝나랴! 성사께서는 다시 1972년 1월 1일 미명을 기하여 영등포구 상도동 은거 에서 정순하고 왼벽힌 밀교종의 창종을 위한 정법체득의 백일 정진에 드셨던 것이다. 백일 정진이 끝나는 4월 7일밤. 한 백수노인으로부터 금관을 받았으며 그 이튿날 밤에는 또 한줄기 서광과 함께 노인으로부 터 대승장엄보왕경과 준제관음범으로 교화하라는 계시를 받으시었다. 성사께서는 관세음보 살의 몽수현전 보문시현임을 활연히 대오각성하시고 곧 교상확립에 착수하셨다. 각고의 노력과 부처님의 가지에 힘입어 마침내 정순하고 완전무결한 정통밀교의 조직과 체계를 완성하시게 되시었으니 이 나라 현대밀교사의 새장을 여는 실로 감격적인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해 8 월 21일, 드디어 관음의 묘지 력에 가피되어 정순하고 원숙한 정통밀교의 마니보를 비장한채 동대문구 상봉동으로 이거하시면서 은거 생활의 수렴을 거두시었다. 그러자 그동안 성사의 행방을 찾아 우왕좌왕하던 진각종의 중진 스승다수와 많은 교도들이 운집하여 입교개종을 최촉하기에 이르렀다.
즉신성불의 대도를 밝히다
마침내 1972년 12월 24일 상봉동에 서울 선교부를 개설하여 개종불사겸 창종식을 거행하였으며 종명을 총지로서 지도한다는 의미로 불교총지종으로 정하여 만천하에 선포하였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정통 밀교가 주옥같은 진언과 정확한 인계, 엄격한 의궤와 사종수법을 비롯하여 이로 정연한 교상과 사상을 갖추고 즉신 성불의 대도를 밝히게 된 것이다.
1980년 9월 8일 종조께서는 74세를 일기로 세연을 다하시고 열반에 드셨으나 교세는 지금 요원의 불길 처럼 번져가고 있으며 명실상부한 정통밀교의 계승자로서 새로운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삼계의 중생들을 모두 건지고 즉신성불의 대도를 열어 영겁으로 이어갈 우리들의 앞날을 밝혀 주시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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