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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환상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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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7-3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언어철학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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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4 17:13 조회 5,6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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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의 언어관 (2회)

언어적 환상 부정

불교에서 말하는 사구(四句)는 인간의 언어적 다툼의 기본적 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같음’ ‘다름’ ‘있음’ ‘없음’ 등의 범주들을 의미한다. 백비 (百非)는 문자적 의미로는 백 개의 부정이지만, 사실은 위의 네 범주 조차도 부정한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을 습득해서 삶을 영위해 왔다. 도구와 기술이 있는 곳에 언어가 있고, 언어가 있는 곳에 도구 와 기술이 있다. 더욱이 언어 자체도 인간의 도구이자 제도이다. 인간의 도구나 제도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언어를 서로의 의사전달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남을 속여서 그로 하여금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도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의 언어적 삶은 이미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위에서 말한 이중성 또는 비합리성에 얽혀 들어갈 숙명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의 한 특징은 자신의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계산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분별성 또는 변계소집성 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분별성을 보다 심화시키고 크게 한 데에는 언 어라는 제도가 절대적으로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저것은 사과가 아니다”, “이것은 돌이다” 등의 긍정과 부정 명제를 늘 사용한다. 이러한 명제의 대상은 반드시 있는가, 아니면 있어야 하는가? 궁극적인 명제의 고유한 대상으로서의 실체는 그것이 명제에 의해서 무엇으로 밝혀지기 전에는 아마도 X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명제가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X의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사구에 도달해서, 칸트의 의미에서 물자체에 대해서 왈가왈부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언어적 논쟁이나 분별이나 궁극적 근거가 세계의 실체라면, 이는 놀라운 사실인가? 아니면 실체의 있음은 우리의 언어적 문법에 사로 잡혀 불가항력적으로 생각해낸 문법적 언어적 환상인가? 이 X의 있음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 불교의 "모든 존재자들은 공(空)이다”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공’과 ‘사구백비’는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사구백비는 네 개의 기본 범주인 같음, 다름, 있음 그리고 없음을 바탕으로 산출되는 분별이나 판단을 해소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존재자들의 실체라고 생각되는 언어적 환상을 부정하기 위한 개념이 바로 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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