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과 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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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7-02-04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지원 필자소속 화음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6 17:31 조회 4,663회본문
화음사 주교 법지원
▲ 성불의 길은 참회에서 시작된다. 잘못을 숨김은 새삶을 포기하는 것.
죄나 복을 지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돌아온다. 하지만 죄나 복을 짓고도 상대도 모르고 나도 모르거니 잊어버렸다면 그 과보를 누가 주는 것 일까?
이것은 오직 우주 대자연의 법칙속에 업력의 힘이 남아 있어서 죄나 복을 지은 사람에게 재앙을 주기도 하고 복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죄나 복을 지을 상대가 있어서 그 상대에게 지으면 그 상대에게서 받지만 상대가 모르게 지은 업은 어떻 게 되는 것일까?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어서 남 모르게 휴지통에 넣는 마음은 비록 복을 줄 개인적인 상대는 없지만 그 업이 쌓이고 쌓이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자연히 돌아오는 천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 아무도 모르고 아는 사람이 없다하여 법을 어기거나 질서를 어겨가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부정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 당시에는 설혹 잘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여기에도 반드시 벌을 받아 재앙이 돌아오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재수니 운수니 우연이니 하지만 자기가 지은 업이 때가 되어 돌아온 것에 불과하다.
업으로 지어진 것은 하나도 빠짐 없이 돌아 오는데 비유하면 다음과 같은 네가지 유형의 반응으로 나타 나게 된다.
①일의 반응이다.
성의를 다하여 일을 하면 성의만 큼 결과가 공정하게 나타난다.
②이치의 반응이다.
저녁에 편안하게 잠을 자면 아침에 상쾌한 기분이 된다.
③물질의 반응이다.
공을 벽에 치면 주어진 힘만큼 역비례로 돌아온다.
④음의 반응이다.
상대방에게 불쾌한 마음으로 대하면 상대도 나에게 불쾌하게 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대하면 상대도 좋은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이처럼 지어서 돌아오는 것은 틀림없이 이 네가지 반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지은 것은 당대뿐 아니라 영겁을 두고 몸을 바꾸어 가면서도 받게된다. 그래서 전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받을 수도 있고 금생에 지은 것을 내생에 받을 수도 있으며 영겁 두고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을 짓는 것은 본인에게 있지만 그 과보를 받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죄나 복을 줄 상대가 있으면 상대에게서 받고 상대가 없으면 자연적으로 우연히 돌아오는 것처럼 업보를 받고야 마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저절로 오는 것 같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엄밀한 업의 결과인 것이다.
어느 지역에는 가뭄이 들고 또 어느 지역은 홍수로 피해를 당하고, 아파트가 무너진다거나 만원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하여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무사하고 등등. 이런 것이 우연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 주 위에서 흔히 선량하고 건강한 사람 이 갑자기 횡사하는 일을 볼 수 있다. “저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 “절에 열심히 다니더니…”하고 들 말하지만 진리에서 주는 과보는 지공무사하여 하나도 틀림이 없이 공평하고 사사로움 없이 지은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어느 호텔에 큰 불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은 일이 있었다.
죽은 사람 가운데 일본사람, 미국 사람, 외국사람도 많았다.
왜 일본이나 미국에서 하필 그 시 각에 한국까지 와서 그 호텔에서 죽 었는가?
그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그 시각에 밖에 심부름 갔다 화를 면한 사람도 있다. 죽을 업보가 돌아오면 업력에 끌려 그 곳에 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업보이다.
우리 인간의 모든 행위와 그 결과는 자기가 짓고 받지만 시간을 격하여 나타나므로 우연히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짓고도 잊어버렸거나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지은 것을 받게 되는 결과이다. 자기가 지은 것을 자기가 반드시 받는다는 이치를 모르 보면 우연히 돌아오는 것 같을 뿐이다.
시간적으로 오늘 지었지만 그 과 는 오늘 받을 수도 있고 몇 년 후, 또는 내생에도 받게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르지만 작은 악업이라도 쌓이고 쌓이면 큰 벌이 돌아오고 작은 선업이라고 쌓이면 시절인연을 따라 복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경에 보면, 불불면정업(佛不免正業-부처도 정업을 면하지 못한다)란 말이 있다.
아무리 불과를 이룬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지은 업은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불공을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줄 알지만 복 받을 일을 지으면서 불공을 해야 복이 돌아오는 것이지, 하는 행동은 벌 받을 짓을 하면서 빌어봐야 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 참회도 필요 없고 믿음도 필요 없고 그냥 되는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무엇한다고 힘써 수행하고 노력하는가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부처님이 어쩔수 없는 업보의 길을 알려주신 것은 오직 자기가 지을 때 선업을 지어야지 악업을 짓고난 뒤에는 부처님에게 아무리 빌어도 지어진 업은 어쩔 수 없이 씨를 뿌린 자가 거두어 들여야 한다는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가 지은대로만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은 짓는 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나는 좋은 인을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에 불과한 것이며 나에게 돌아오는 결과가 어떻게 돌아 왔는지를 좀더 깨쳐서 밝고 복된 업을 짓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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