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염송으로 살아온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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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11-18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이런불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최재숙 필자법명 - 필자소속 원각화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6 07:18 조회 4,354회본문
그러나 여기 최재숙보살(61)은 경우가 다르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유별나게 힘겨운 일과 만난 적이 없어 굳이 종교적 강한 존재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벌써 40여년 누구 보다도 열심히 종교생활을 해오고 있다.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불공을 한다. 1시간 정도 정진한다. 서원이 있어서 그렇게 열심인 것은 아니다. 그냥 생활습관으로 굳어졌을 뿐이다.
또 최보살은 실지사 총무를 벌써 25년째 맡아오고 있다. 하는 일이란게 매달 보살들로 부터 작은 액수를 거둬 저금하는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지만 그일을 강산이 두 번이 훨씬 변하도록 계속해온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푼돈이던 것이 이제는 꽤 큰돈으로 불어났다.
“현교계통의 절에는 거동이 불편 한 노인들이 불공하러 절에 다니는 어려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절 안에 노인들이 기거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는데, 아직 우리 종단은 그런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있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돈이 기둥이 되어 그 사업이 하루 빨리 이뤄지도록 서원하고 있습니다.”
최보살이 밀교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결혼하고 곧 바로다. 친정에서 현교절에 다녔는데 결혼을 하니 시어머니와 시이모가「옴마니반메훔」을 열심히 외고 있더라는 것. 이모는 자신의 집을 서원당으로 제공하기까지 했다고. 이들이 바로 우리나라 초창기 밀교의 숨은 공신인 것이다. 그때가 밀교가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50 년대니까.
그는 아무런 반감없이 자연스럽게 시어머니를 따라 서원당에 나가 열심히 육자진언을 독송했다. 그때는시동생 '둘도 함께 살았으므로 온가 이 자성일이면 서원당으로 향했던 것이다.
“부처님을 믿으면서 남들처럼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부처님의 가피를 누구 보다도 크게 입은 것같 아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이들이 모두 올곧게 자라 일류대 학을 나와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고 또 지극한 효자효녀예요.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어요.”
평소 자식들에게 강조한게「남을 이롭게 하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 하라」이라고. 종교생활을 하며 자연 적으로 갖게된 인생관을 집에서 실천했고, 그게 자녀들에게 본보기가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최보살은 또한 각자님과도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각자님이 열반했을때가 평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던 것 같군요. 생전에 유별나게 금실이 좋아서였는지 혼자 남게되자 그 허전함을 극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아프기까지 했어요. 그때 무엇에라도 몰두해야 겠다는 생각에 서예를 시작했어요.” 최보살의 서예는 수준급이다. 입상경력까지 갖고 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보살에게 위로가 된 것은 종교생활이라고. 각자님이 열반하 신 후 더욱 열심히 절에 다니고 있다. 경인교구합창단에서 음성을 공양 하고, 총지불교대학 제1기생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남을 이롭 게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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