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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서 쿠시나가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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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5-23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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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4 06:52 조회 5,5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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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서 쿠시나가라까지
연등회 기념 4대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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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원, 마야부인당이 무우수 뒤로 보인다.

탄생지 룸비니


룸비니는 네팔 남부 타라이 지방 최대의 도시인 바이라와 서쪽 약 18 킬로미터 되는 지점, 즉 티나우강등 몇 개의 작은 강들을 가로질러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현재 룸비니는 불교도의 순례지로서 정비되어, 지난날 이 지역을 뒤덮고있던 정글은 북쪽 산기슭으로 멀리 밀려났다. 유적의 중앙에는 흰색으로 단장된 아담한 '마야부인당이있다. 사당 내부에는 표면의 침식으로 표정조차 확실치않은 마야부인이 종자와 함께 나무 밑에 서있는 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이 상을 손으로 만지면서 예배하고 있다.

보통 ‘마야데비 템플’로 불리는 사당의 남쪽에는 석존의 탄생시에 마야부인이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네모난 연못이 있어서, 옆에 선 큰 나무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남쪽으로는 승원터가 묻혀있다.

아쇼카왕이 건립한 석주는 마야부 인당 서쪽에 있는데 현재의 높이는 약 7.2미터이다. 석주의 일부에는 낙뢰의 흔적과 균열이 있지만, 표면에는 마우리야시대의 독특한 기법으로 갈고 닦은 광택이 그대로 남아있다. 기단으로부터 약 3.3미터 되는 위치에 아쇼카왕의 비문이 보인다.

마야부인당 주변에는 벽돌로 만든 크고 작은 봉헌 스투파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성도의 땅 보디가야


보디가야는 비하르주의 가야시 남쪽 약 10킬로미터 되는 지점,즉 동경 85도의 자오선상에 있다.

가야시에서 오른쪽으로 가야쉬르 샤언덕과 왼쪽으로 화르구강을 사이에 두고 전정각산을 바라다보는 평탄한 길을 가다 보면, 보드가야 대탑의 끝머리가 푸른 나무숲 사이로 멀리 보인다.

이곳은 일찍부터 석존의 성도와 관련하여 ‘삼보디’, ‘마하보디’ 등으로 불려왔다. 또 13세기에 이곳을 찾아 온 티베트의 승려승 다르마스바민처럼 금강보좌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화르구강의 지류인 나이란자나강의 언덕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석존 성도의 성지가 있다. 이 일대는 예전에는 모래에 묻혀있었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정비된 유적이 펼쳐지고 중앙에 대탑, 서쪽에 금강보 좌와 보리수가 서로 인접해있는 것 이 보인다. 그것들을 에워싸듯이 돌 로 만든 난간 기둥들이 쭉 둘러져 있으며, 또 그 주변에는 크고 작은 갖가지 스투파가 봉납되어 있다.

대탑 북쪽에는 석존이 성도직후의 7일동안,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즐기면서 산책을 했다고하는 전설의 장소가 있다. 그곳에는 높이와 폭이 각 각 1미터 정도 되는, 콘크리트로 덮인 돌축대가 18미터에 걸쳐 이어져 있고, 석존이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때마다 피어났다고 하는 열여덟개의 연꽃이 상징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초전법륜지 녹야원


녹야원은 현재 사르나트라고 불리 며 바라나시 북동쪽 약 7킬로미터 되는 지점에 있다. 그 지명은 ‘사랑 가나타’(사슴의 왕) 를 생략한 말에서 유래한다. 

바라나시에서 사르나트에 이르는 지역 일대는 평탄하고 거의 기복이 없는 인도평야가 이어진다. 영불탑쪽에서 조망해보면 수림의 머리 너머로 원형의 돔 형식으로 세워진 다메크 스투파와 모가난 첨탑을 가진 현재의 므리가다바쿠티의 두 건축물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메크 스투파의 표면은 직선적인 기하학적 무늬나 새, 인물상 등이 꽃 무늬 속에 배치되어 있어서 디자인이 매우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 어있는데, 이 장식 부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혀 시대적인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않는다.

현장은 녹야가람 승원의 장대함을 기록하고 있다. 그 옛날 번영을 누렸 던 이 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현장은 석존이 미륵보살에 수기를 준 흔적의 윗 부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바, 이것이 곧 현재의 다메크 스투파인 것으로 추측된다.


열반지 쿠쉬나가라


쿠쉬나가라의 유적은 고라크푸르의 동쪽 전원 안에 남아있는 사라수의 원시림을 빠져나가 50킬로미터 남짓되는 카시야마을에 흘어져있다. 5세기 초에 하리바라라는 신자가 기증한 전장 6미터가 넘는 거대한 열반상을 모시는 열반당의 뒤쪽 스투파에서 이 땅이 니르바나 차이탸라  취지의 각문이 새겨진 동판이 발견되었고, 수대를 거친 한 쌍의 사라수가 커다란 타원형의 잎을 달고 있다.

열반당의 약 1.5킬로미터 되는 지점에는 석존을 다비에 붙인 마쿠타 반다나 터로 추정되는 라마바르총이 있는데, 예전에는 눈먼 중국승려가 홀로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 스투파를 둘러 흐르고 있는 작은 시내가 바로 석존이 최후에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히라냐바티강이 라고 한다. 또 파바에서 쿠쉬나가라로 향하면서 병고에 시달린 석존이 물을 마시려고 했을 때, 마침 5백명 의 대상들이 건너간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카쿳타강으로 추정되는 작은 시내가 그 더욱 동쪽 약 4킬로미터 지점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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