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의 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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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5-23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특별기고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권기종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동국대 교수, 불교문화연구원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3 18:04 조회 5,491회본문
그러나 초기 대승불교에서는 보살 을 단순히 보살이라고만 하지 않고 보살 마하살(bodhosattva mahasattva)이라고 구별하였다. 물론 오늘에 있어서는 이 마하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생략하여 보살이라고만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초기 대승불교의 지도자들이 ’마하살’이라는 말을 쓰 게 된 것은 아무 이유도 없이 썼던 것이 아니다. 보살, 즉 ‘깨달음을 구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自利의 완성을 구한다는 뜻으로, 이것은 성문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한 대승불교의 새로운 수행자는自利만의 추구에 만족하지 않았다.
마하살, 즉 mahasattva큰 사람’, ‘위대한 사람’, ‘위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중국에서는 大士라고 번역 하였던 것이며, 보살대사는 보살마하살의 번역어였다. 왜 이 보살들에게 굳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추가하였을까? 그것은 보살 이 단순히 자리의 깨달음만을 완성 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치」쏘에 대한 완성을 지향하고 있는 사람이 理他 라는 표현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대반야경』에서는 보살품 과 마하살품을 구별하였고, 또 보살이란 어떤 뜻이며, 마하살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물었다. 여기서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살 이라고 하지만, 유정의 대집단, 대군중의 上者가 되어 많은 사람을 영도 한다는 뜻에서 위대한 사람, 즉 마하살이라 한다고 설해지고 있다.
이리하여 보살마하살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게 된다. 첫째는 관일체법공이요, 둘째는 불사일체중생이다.
첫째, 一切法이 모두 空하다고 보는 것은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깨달음 이라는 것까지도 집착하지 않으므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므로 구애되거나 두려울 것이 없다.
둘째,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는 것은 자신이 열반에 들려면 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열반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괴로워하는 유정들의 세계를 보고 그 속에 뛰어들어 그들을 구하고자 한다. 그 래서 보살마하살은 무량한 유정들을 열반으로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 그
렇지만 열반으로 인도될 사람도, 열반으로 인도할 사람도 없다. 또 무량 무수의 중생을 열반으로 이끌지만 실로 한 중생도 인도된 사람은 존재 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법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므로 ‘보살마하살은 허공의 갑옷을 입고 실재하지 않는 유정을 위 하여 실재하지 않는 적과 싸운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실재로 살아 있었던 많은 보살마 하살들은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였으며 이러한 삶을 살 았던 실존적 인물은 대승경전의 편찬 과정에서 경전속으로 투영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살은 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自利的 人格이 아니라 理他의 위대한 일을 함께 추구하는 보살마하살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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