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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위대성은 역사가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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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5-23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사설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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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3 05:44 조회 5,0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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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위대성은 역사가 증명
교계 단결로 정법 수호를


부처님께서 이땅에 오신지 2540년. 해마다 그날을 기리고 부처님 오신 뜻을 되새겨 보지만 올해는 그 어느때 보다도 착잡하다. 부귀와 영화를 다버리고 오직 진리의 길을 찾아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고행 끝에 인류의 미망을 깨뜨리는 빛을 드리워 주신지 2000년이 넘었건만 중생의 작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만큼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부처님이 법륜을 굴리신 이래 그 법화가 미친 곳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불교가 윤리의 중심이 되면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왔다. 기독교 문명이 일세를 풍미한 중세를 암흑기 라고 하는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불교는 그만큼 우리의 마음 그릇을 넓혀 주고 정신세계를 계발해 주므로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불은을 입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삼국시대와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로 이어지는 동안의 찬란했던 문화와 굳건 한 기상을 통해서 불교는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왔고 한민족 이 하나로서 오늘까지 이어오게 된 원동력이 되었음은 국사에 조 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땅의 불교를 생각할 때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불교 스스로의 타락과 무사방일에 더하여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서구 사조의 격랑 속에서 불교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사회의 한켠으로 밀려난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관주도의 종교 편향 정책, 사회 긱처에서의 이승외 도들에 의한 불교 음훼, 바른 불교를 전달하지 못함으로 인한 불 교도의 세대간 단절, 불교계의 타락과 분쟁으로 인한 사회인의 멸시등 이 땅에서의 불교는 그 어느때보다도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대한 원인은 일차적으로 불교계와 불교인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선 승직자들이 청정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감투싸움과 정재의 부정한 운용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으므로서 스스로 위축되어 바르고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상황이 된 것이 불교인 스스로 반성해야 할 가장 큰 항목이다. 다음으로 각고의 노력과 수행으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이해할 생각은 하지않고 선대 불교인들의 후광에 힘입어 무사와 안일로서 불교를 단지 생활의 방편으로만 이용하려고 하면서 기복불교에 국한 시킨 것 또한 불교인들이 하루 빨리 시정해야 할 악덕이다. 

한마디로 자체가 정화되고 정립되지 못하고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사회 각처의 불교 박해에 맞서고 정법을 세워 이 나라 를 살리기 위해서는 불교인들도 단결해야 한다. 나만 무사하고 나 에게 직접적 피해만 없으면 된다는 소승적 사고를 떨쳐버리고 불 에 대한 그 어떠한 침해에 대해서도 대동단결하여 맞서야 한다. 정법을 수호하고 마구니들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때보다도 불교계의 단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그 분의 오신 뜻이 무엇이며 그 가르침의 근본의미는 어디에 있었던가를 상기하고 불교도로서 중생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통찰하여 이땅에 불교의 찬란한 꽃을 다시 한 번 꽃피우고 극락정토를 건설하므로서 부처님 의 은혜에 보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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