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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혼을 새겨온 30년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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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07-3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藝人(예인)을 찾아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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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최규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전각가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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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5 08:37 조회 5,4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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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혼을 새겨온 30년 외길
글자를 조형예술로 표현한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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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X9게 크기의 돌의 표면. 부리가 나오고 머리는 몸에 비해 작으며, 다리는 짧으나 발은 튼튼하고, 날개가 작아 날지못하는 닭의 형태가 간략 하게 특징만으로 새겨져 있다. 위는 玄老 최규일씨의 전각작품이다. 닭의 특징을 잡아 돌의 표면에 그림을 그리고 칼로 새긴 것이다. 사물의 모양을 본떠 생긴 상형문자를 보는 듯하다. 현노의 작품은 전각계에서 이방인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먼저 전각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나무나 돌, 금옥등에 글 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전자를 새기기 때문에 전각이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개념을 벗어났기 때문에 현로의 작품이 이방인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의 글씨는 차라리 그림이다. 글자를 조형예술로 표현한 것이다.

인류가 처음 글자를 만든 것은 석기시대로 상형문자였다. 사물의 모양  본떠서 글자를 만들고 음을 붙였다. 상형문자에는 당시인의 사고와 생활이 나타나있다. 인간의 의식이 발달하고 물질의 발달이 정신을 앞지르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진리로부터 멀어져왔다. 그러나 미개하고 지능이 낮은 원시인이  히려 자연과 혼연일체를 이루었고 순수한 의식에 의해 진리에 더욱 근접했던 것이다. 상형문자에는 고대인의 순수한 의식이 담겨있고 진리를 향한 문이 있다.

그러나 현노가 고대인의 상형문자를 그대로 모방해 새기는 것은 아니다. 그만의 새로운 상형문자를 창조 한 것이다. 물질시대에 살지만 그를 현대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시대와 무관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두침 침하고 습기가 많으며, 지저분한 지하 창고로 내려가야 한다. 그가 개인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 성북구 정릉1동 138-12호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의 지하다. 바로 위 에서는 차들이 요란하게 클랙슨을 울리며 빠르게 달리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물질을 신으로 섬기며 바쁘게 살아가는데 반해 그는 지 에서 수염과 머리를 기른채 수도 승처럼 앉아있는 것이다. 

하루의 대 부분을 이곳에서 칼로 돌을 파며 보낸다. 

처음 그를 보는 사람이라면 궁상 맞다고 여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술가라면 그를 부러워할 수 밖사에 없다. 작품을 통해 누구 보다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것이다. 비좁은 공간에 있지만 하늘을 마음껏 나르는 새 보다 자유롭고,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돌에 글자를 새기고 있는 동안은 세상을 다 소유한 사람 만큼이나 넉넉 하다.

“전각은 내 삶이예요. 생활과 전각을 분리하지않아요. 매일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작업량이 가장 많은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매일일지를 쓰며 작업을 기록하는 그는 거의 매일 일을 하는 것이다. 위의 말처럼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일을 한다. 돈이 생기는 것도 명예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하 루도 빠지지 않고 어두침침한 지하 실에서 무려 30여년을 돌과 싸워온 것이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보면 길 이 보여요.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거미에게서 줄이 나오듯이 창조적인 생각이 끊어지지않지요.”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어느것 하나 같은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여 (旅)한 글자를 가지고도 6백 여개의 다른 조형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에게는 스승이 없다. 즉 누구도 사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각가들이 한 스승의 작품을 모방해 결국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이뤄내는데 비해 그에게는 처음 부터 스승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독창적인 것이다. 칼의 선이 매끄럽지 않은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우리 나라 전각계에서 그는 이제 한 줄기를 차지했다. 어느 누구와도 닮지않은 현노만의 전각을 창조한 것이다. 혼자서 묵묵하게 외길을 걸어온 그는 지난 85년 경인미술관 초대전을 시작으로 독일문화원 초대전 캠브리지 갤러리 초대전 등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까지 11회의 초대전을 통해 작품을 소개해온 것이다. 오는 연말 에는 일본화랑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고. 요즘은 일본 전시회 준비로 더 도 잊은채 돌과 칼을 벗삼아 전각 삼매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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