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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존 당시의 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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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8-04-07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개설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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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1 05:52 조회 4,7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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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개설 (2회)

석존 당시의 사상가들
-육사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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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존의 위대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아직도 육사외도 그늘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인도인들



1.전환기의 혼란상과 자유사상의 발생

기원전 5〜6세기경이 되면 인도문화의 중심지가 갠지스강의 중류로 옮겨지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군소국가들이 대국가로 병합되는 추세로 나아가, 크샤트리아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상공업의 발달로 바이샤 계급이 경제적인 부(富)를 장악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재물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게 되고, 향락적인 생활 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되어버린다. 계급제도 등 전통적인 질서와 윤리의 파괴로 사회는 극히 혼란한 상태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갠지스강 중류는 아리안족의 근거인 서북인도에서 볼 때 변경이 었으나, 와족을 중심으로 한 신흥세력이 일어나고 있었고, 사상적으로는 자유사생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이 곳에서는 전통적인 바라문 사상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겨 많은 반전통적인 자유사상가들이 배출되었다. 석존도 인도사상사에서 볼 때는 그 중의 한사람이며. 불교에서는 불교이외의 이단사상가들을 육사외도라고 불렀다.


2.육사외도(六師外道)

이러한 당시의 사회에서는 윤리도덕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 을 공공연하게 표명하는 자유 사상가들이 있었다. 그 대표자는 푸라 나 카삿파이다. 그는 선(善)과 악(惡)의 구별이란. 인간이 거짓이 정한 것이요, 진실로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업(業)에 대한 응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도덕관념을 부정했다.

파쿠다 캇차야나는 유물론적인 사람으로 그 역시 선악업이나 그 것의 과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각 개체는 일곱 가지의 집합된 요소, 곧 地  · 水  · 火 風의 4원소와 善 · 惡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막칼리 고살라는 처음에는 자이나교의 교조인 마하비 라와 함께 수행하였으나 나중에 그와 헤어져 자신의 독자적인 교설을 형성한다. 고살라의 설에 의하면,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서 영혼 地  · 水  · 火 風 ·허공 ·得  ·失 · 業  ·生  ·死의 12종이 있다. 여기에서 허공은 다른 11개의 요소를 성립시키는 장소 다 ·득 ·실 ·고 ·락 ·생 ·사라고하는 6종은 이들의 명칭으로 불려지는 현상 작용을 가능케 하는 원리를 실체로 본 것이다.

또한 영혼과 다섯가지 원소를 인정 하고 있으므로의 三元論의 입장이지만, 그 영혼은 물체와 같이 생각되고 있으므로 유물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인간만이 아니라, 일체의 생명 있는 것의 운명에 관해서는 숙명론(결정론)의 입장에 서고 있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일체의 생물이 윤회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無因無緣이며, 그들이 해탈하는 것도 무인무연이다. 또한 그는 윤회의 기간은 예정되어 있으며(8백40만 대겁),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위도 부정하고, 개인의 業에 의한 인과응보도 부정하여 철저한 결정론(숙명론)의 입장에 섰다. 

네 번 째 인물인 아지타 케사캄발리는 도덕부정론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地  · 水  · 火 風의 4원소만이 참된 실재요 독립상주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이들 원소가 존재하여 활동하는 장소로서 허공의 존재도 인정했다. 물론 인간도 이들 4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으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던 地는 외계의 地의 집합으로 돌아가고 水는 수의 집합으로, 火는 화의 집합으로 風은 풍의 집합으로 돌아 가서 모든 기관의 능력은 허공으로 돌아가며, 인간은 죽음과 더불어 없어지는 것으로서 몸 외에 죽은 뒤에도 독립하여 존재하는 영혼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현세도 내세도 존재하지 않고 善業 이나 또는 惡業 지었다고 하여 그 과보를 받는 일은 없다고 하여 그는 철저한 유물론자로서 물질이외의 영혼이나 정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같은 인도의 유물론을 차르와카라고 부르는데, 후세의 문헌에도 그 이름이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오래도록 그 유파가 남아 있었던 듯하다.

다섯 번째로 산자야 벨라티풋타는 회의론자로서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거나 서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은 진리이고 다른 사람의 설은 오류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되면 세상에는 서로 다른 진리가 얼마든지 있게 되어 곤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들은 모두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유일한 객관적인 진리가 인식되어 질 수 없다면, 서로 주관적인 주장을 내세워 논박해도 쓸데없는 것이 다. 차라리 그러한 말장난을 버리고 善惡의 판단을 중지하는 가운데 진실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명하고 유효하다고 하여 不可知論的 회의론을 주장하였다. 석존의 뛰어난 두 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도 본래 이 산자야의 제자였는데,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다음 해 왕사성에 왔을 때 석존의 말씀에 감명을 받아 동문 250인과 더불어 석존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산자야는 업보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긍정하지도 않아 철저한 회의론의 입장을 고수했다.

마지막 여섯 번째의 스승은 자이나교의 교조인 니간타 나타풋 타이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나타족의 출신자’ 라는 뜻으로 그의 본 명은 바르다마나(Vardhamana)이고. 크게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마하비라 (Mahavira)(위대한 영웅)라고 존칭되 었다.

〈자이나〉라고 하는 말은 ‘지나 (Jina)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는 인과업보를 인정한 온건파였으며, 비정통파중에서는 자이나교가 불교 다음으로 위대한 활약을 하였으며, 그 후에도 세력을 계속 유지하여 현재 까지도 인도 본토에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같은 시대에 거의 같은 지방(인도 동북부)에서 같은 계급(왕족)의 출신자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러므로 교리도 비슷한 점이 있고, 신화나 전설에도 공통적인 것이 적지 않으며, 교단의 구성도 유사하고. 수행을 완성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도 공통적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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