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밀교의 개척자- 원정 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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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6-11-18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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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5 09:12 조회 5,533회본문
우리나라 현대밀교의 개척자이며 총지종의 종조인 원정대성사 열반 16주 기를 맞이하여 종단원로로터 원정 종조님에 관련한 일화를 듣는다.
(편집자주)
원정종조님은 무엇보다도 공사의 구별에 철저하셨다고 한다. 재가불교로서 공사의 구별이 철저하지 못하면 자칫 불미스러운 오해가 있기 십상이기 때문에 원정님은 이런 일에 몸소 본을 보이신 것 같다. 효강 법장원장에 의하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20여년 전에는 포니가 제법 대접을 받을 때였는데 당시 본산에는 업무용으로 포니승용차가 한 대 있었다. 종단의 가장 큰 어른 이었던 종조님께서도 볼일이 있을때 는 그 승용차를 이용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70을 훨씬 넘기신 원정님께서 해가 다 저물어가는 무렵 혼자서 버스를 탄다고 나가시는 것이다.
큰댁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이는 종무와 관련 없는 것이라 하여 굳이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하시더라는 것이다. 원정님께서는 이처럼 종무와 사무를 철저하게 구별하셨다.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시간에서도 철저 하셨다. 공적인 시간에 개인 볼일을 보는 것은 일체 금하셨다. 누가 지켜 봐서가 아니라 부처님 덕에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 여기셨던 것이다.
또한 시간만 나면 불공을 하셨는데 백일 불공 정도는 대수럽지않게 여길 만큼 종조님은 일상생활과 불공을 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시불공 처처불공을 강조하시며 불공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생활이 곧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통리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청암 정사(현 지인사 주교)는 원정종조께서는 기억력이 뛰어나고 판단력과 예지력이 탁월하셨다고 회고했다.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한 번 들은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앉으셨으며 사태를 보는 눈이 굉장히 정확하고 의견제시가 분명하여 빈틈이 없으셨다고 한다. 어느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원정님께서 라디오를 들으며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는데, 나중에 여쭈어보니 라디오 내용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고, 쓰시던글도 한 자 틀리지않고 쓰셨다는 것이다. 본산건물을 지을 때도 그 쓰임새를 정확하게 내다보시고 문은 어느 방향으로 내고, 복도 폭은 얼마를 잡고 등을 오히려 건축업자에게 지시하고 일일이 지적해 주셨다고 한 다.
또한 원정님은 날카롭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성품이 온화하시고 교도들의 말에 항상 귀기울이시며 의견을 청취하셨다고 한다. 또한 유머가 풍부하시어 좌중을 즐겁게 하 시기도 했으며 사고의 폭이 한정되지 않고 모든 면에 박학하시어 사람들을 슬기롭게 깨우치시므로서 이 시대의 대승보살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았나 하는 것이 가까 이에서 모셨던 여러 원로들의 한결 같은 의견이다.
원정 대성사께서는 1907년 1월29 일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 에서 탄생하셔서 현대밀교 발전에 큰 주춧돌을 놓으시고 1980년 9월8 일 74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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