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술, 기술의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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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7-04-17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소동석칼럼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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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7 19:36 조회 4,850회본문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 가운데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황당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확신을 갖고 보통사람이 하지 않는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 왔다. 더러 이런 이들을 칭찬하며 추켜 세워주기도 하는데 개중에는 진짜 ‘기이’한 행동으로 인류사에 혁혁한 기여를 하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황당한 시도 그 자체로 그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황금을 어렵게 찾아 나서지 않고 집안 에서 만들 수만 있다면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장악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금은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그래서 황금은 모든 가치나 가격의 척도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인류사를 뒤적여 보면 이런 황당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 보려고 평생 을 바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을 ‘연금술사’라고 하는데 약 7세기 전부터 몇 세기 동안 끊이 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유럽인들이 바다를 주름 잡고 또 이런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 각 대륙이 서로 연결되는 등 상업자본의 역할이 비등하여 지면 서 ‘연금술’은 더욱 사람들을 유혹하였으나 결국 성 공하지 못했다.
또 이런 사람도 있다.
수학에는 ‘피타고라스정의’ 처럼 이름 붙혀진 정의가 여럿 있는데 이 가운데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무슨 정의라고 한단다. 그런데 이 정의를 풀어보려고 평생을 바치는 사람 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정 의만 풀면 단박에 인류사에 영원히 남을 수학자가 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인가.
또 이런 사람도 있다. 어떤 물체에 한 번 충격을 주면 강제로 세우지 않는한 연원히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려는 사람이다. 이른바 ‘무한동 력장치’라고 하는데 이 장치의 발명에 성공하면 연 료 없이 동력을 일으킬 수 있게 되므로 발명가는 떼돈을 벌게 될 것이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우리나 라 사람 중에도 여럿 있다고 한다. 오래된 얘기인데 아직 성공했다는 소식은 없다. 비슷한 경우가 되는 데, 기름값이 비싸고 오래지 않아 고갈이 될 것이므 로 아예 순수한 물로 가는 자동차를 연구하는 사람 도 있다. 특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국민 으로서는 제발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어디 쉬운 일 인가. 있지도 않은 보물섬을 찾아 바다를 헤매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말인가.
20세기 들어와서 굳이 ‘연금술’을 연구하지 않아도 황금을 만드는 기술을 발명한 것과 진배없는 경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이었던 1, 2차세계대전을 치루면서 페니실린이 발명되었는데 이 발명으로 인류의 최대질병으로 꼽히던 염증이 그 지위를 잃었다. 물론 발명가는 황금더미에 앉았 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의 유명한 제약회사들은 페니실린의 영광을 더욱 발전시켜 인류을 괴롭혀 왔던 불치병이나 급성전염병의 치료약을 개 발하고 있다.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이들 제약회사나 연구소의 성과들은 실로 인류의 미래에 병의 고통은 없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이들이 개발된 의약품을 실험하기 위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가난 한 나라 어린이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도 잊지 않으면서.
인류가 겪고 있는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의 개발은 20세기 중엽 이후 경악할 만큼 놀라운 속도로 예방과 치료의 정도를 넘어 ‘새로운 생명’을 속속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것을 생명과학이라고 이름을 달았다. 마치 고염나무를 다른 나무와 접붙혀 먹음 직한 감이 주렁주렁 달리게 하듯 생명과학은 상상 을 초월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수퍼감자’라느니 호랑이와 사자를 짝지어 ‘라이거’가 나왔다느니, 과장해서 세파트만한 ‘수퍼쥐’의 탄생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어쩌면 마음만 먹으면 병아리를 낳는 닭도 나올 수 있고 날개 달린 돼지 도 가능할지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페니실린의 남용으로 염증균이 오히려 더 극성을 부리는 것 처럼 생명과학의 후유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연금술’은 그래도 낭만적이었 지만 이제 황금을 만드는 것 보다 더 큰돈을 보장 하는 생명공학의 성과는 과연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가 하는 회의를 갖게 한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마침내 ‘생명복제’의 실현을 보게 하였다. 지구상의 생명은 창조주로부터 나왔다 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은 일제히 생명복제에 대해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의 질서를 정면으로 위배 하는 행위는 사악한 짓이라고 한다.
하긴 그네들 종교의 존립근거가 없어지게되니 되니 극구 반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몸속에 있는 세포를 이용하여 본래의 모습을 복제하는 기술 에 이르러서는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도 뭔가 섬 짜한 감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과학의 발전을 거부하지 않는다. 과학은 사회적 생산력을 높히며 나아가 진보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인간의 인식을 고도화하며 궁극적으로 미신적 세계관을 교정하게 한다. 그러나 과학이 던 기술이던간에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배제 된 발전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 생명복제가 나를 섬찍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 배제된 생명을 무수하게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어떤 필요에 의해 생명을 만들고 기계 부속품처럼 적당히 쓰고나서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 기 싫다. 부모의 은혜는 다른데 있지 않다. 당신들 이 고통을 참으며 나를 낳아주셨고 진자리 마른자 리 가려가며 키워주신 사랑이 바다보다 크고 하늘 보다 높아서이다.「부모은중경」은 중생의 바른 도리 가 사랑과 이에 대한 보답, 즉 효에 있음을 강조하 고 강조한다.
인간이 다른 짐승과 구별되는 것 역시 여기에 있다. 생명복제가 그저 인간을 보다 오래 살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제 명대로 살더라도 참으로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한다면 적극 환영하겠다. 하지만 자본의 이익을 위해 모든 기술이 지배 당하는 사회에서 그를 기대하기란 ‘모래를 쪄 밥을 구하기’와 같이 어리석다. 사랑이 담긴 생명공학, 그것의 전제는 자본의 굴레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 낡은 사회를 개조하는 ‘연금술’을 발명했다는 소식은 언제나 들릴까. (전 민불련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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