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다마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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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7-04-17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이런불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심지행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0 08:48 조회 4,661회본문
밀교를 만난 것은 이 생의 영광
그 수많은 날들을 불공하는 정성으로 차곡차곡 다지며 살아온 장보살의 이력을 그 밝은 얼굴에서 보이는 듯하다. 요즘은 서예지도와 합창 연습, 그리고 뒤늦게 재미붙인 고전 무용을 배우느라 절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게 활기찬 삶을 살아 서일까? 동료 보살님들의 얘기를 들 으면 전보다도 얼굴이 더 피어나는 것 같다고 한다. 장수복 보살의 불명은 심지행.
20년전에 원정종 조님으로 부터 받은 것으로 굳건한 심지를 가지고 끝없는 보살행을 펼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심지행 보살의 삶에서도 모든 파란 을 말없이 이겨내고 언제나 밝은 얼 굴로 마음밭을 일구어 온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행보살은 신라의 고도 경주에 서 인동 장씨 가문에 태어 났다. 경 주가 원래 우리 나라 불교의 산실이 라 할 정도로 도처에 절이 널려 있 고 가는 곳마다 불상이요 불교적 색 채가 짙은 고장이라서 심지행 보살 도 너댓살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백율사에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래 서인지 밀교와도 비교적 쉽게 인연 이 맺어졌는데 평생토록 정신적 지 주가 되어 온 밀교와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반세기가 가까워 온다고한다.
보살이 스무살이 되던 해에 어 머니 친구 한사람이 정신이상이 아 주 심했는데 ‘옴마니반메홈’을 염송 하고 완치되는 것을 보았단다. 그것 이 계기가 되어 밀교에 재미를 붙이 게 되었고 정진한 결과 여러 가지 법문을 보게되고 진리가 체득되면서 이제는 성불의 그날까지 종지로 삼 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특 히 그때 읽던 경전 중에서 옥야경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아 눈물이 흐르 고 감격스러웠다고 하는데 지금도 딸에게 하심하고 순종할 것을 가장 큰 미덕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그렇게 맺어진 밀법으로 불심을 가슴에 묻고 처녀시절을 가꾸어 가 고 잇었는데 서울에 놀러와서 친구 하숙집에 갔더니 옆방에 잘 생긴 총 각이 살고 있더란다. 그 분이 남편이 된 각자님인데 그 당시에 내무부 공 무원이었다고 한다. 어째 부처님이 정해주는 인연같아 쉽사리 혼인이 되고 이후 4남매를 낳고 큰 탈 없이 잘 살았다는데 말씀이야 그렇지만 살다보면 어찌 어려운 일이 없었겠 는가? 늘 ‘옴마니반메훔’을 의지삼아 부지런히 절에 다니며 마음을 조심 스레 살피고 다둑거려 살아왔기에 모든 고비를 무난히 넘겼던 것 같다. 심지행 보살이 가장 어려웠을 때는 각자님이 돌아가셨을 때라고 한다. 15년전에 고혈압으로 갑자기 돌아가 셨는데 그 때의 슬픔은 ‘옴마니반메 훔’이 아니었으면 정말 극복하기 어 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평생 지기가 먼저 떠나셨으니 그 슬픔이 오죽했을까? 혼자서 불공에 몰두하며 그 슬픔들을 차근차근 삭여내었다고 한 다.. 그때가 81년이었는데 서예도 그 무렵에 시작했다고 한다.
쉰이 넘어 배운 서예로 한국서예가총연맹이 주최한 제1회 한국서예대전에서 추사체로 당당히 입선했는데 심지행이라는 불명이 헛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이를 극복 하고 끊임없는 정진을 계속하는 참 불자의 모습이 여기에서도 보인다. 생활과 불교를 하나로 하여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착실히 걸어가는 심지행 보살.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생활신조이며 이 생에서 밀교를 만난 것이 너무나 큰 다행이라고 말하는 보살에게서 관세음보살의 지혜와 자비의 미소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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