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새롭기를 바라는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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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7-02-04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예인을 찾아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이시규 필자법명 목정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07 18:17 조회 5,161회본문
모르긴 몰라도 인사동 거리만큼 현수막이 어지러울 정도로 걸린 거리가 서울, 아니 전국의 어느 도시에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게다가 거리에 진귀한 공예품이나 장석물을 파는 난장까지 들어서기 때문에 혼잡 속에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북 대어 그야말로 동서양을 아우르고 있는 곳이다. 조계종의 수사찰, 조계사가 버티고 있어 마치 인사동은 우리 한국불교문화의 거리 전시장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바로 이곳의 가장 중심에 필방이라고 있다.
인사동의 고만고만한 가게에 비하면 그래도 꽤 넓은 점포에 속한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는 명소라고 할 수 있 다.
지난해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이 한국을 국빈 방문하였을 때 그가 찾은 곳도 인사동이며 그 중에서도 또 유독〔명신당〕을 찾았다. 이 필방의 주인인 목정 이시규씨(42살)의 명성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카를로스 국왕은 워낙 검소한 나머지 명신당에서 취급하고 있는 문방 이나 용품을 사지 못했고 대신 목정 으로부터 기념으로 휘호 한 점을 선물 받았다.
목정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등 과정을 모두 그곳에서 보냈다. 부친 이상직옹은 조각을 하는분이었다. 부친의 영향을 받았는지 학교 시절 그림공부에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그림공부는 서양식 회화였기 때문에 좋아하면서도 내키지는 않았다.
고학년이 되면서 서예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여 붓과 먹을 잡으면서 그는 숙명적 업으로 서예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의 남동생 역시 형을 따라 서예인이 되어 형제가 서로 독려하며 궁극의 예와 도를 구하고 있다.
목정의 스승인 초정 권창륜선생은 한국서단의 거목으로 일컫는 분이다.
여초 김응현선생의 서법을 이은 초정은 많은 개인전을 가졌고 작년 11월 예술의 전당에서 상당히 큰 규모로 서전을 열은 바 있으며 그간의 역작을 모은 서집을 발간하여 후학 들에게 서법예술의 진수를 잇게 하 는 분이다. 초정선생이 즐겨 쓰는 글 은〔문자향 서권기〕 인데 목정 역시 스승의 영향으로 문기가 그득하다.
목정 스스로는 평생 청출어람의 경지를 이룰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하지만 목정의 문하에 벌써 제자가 숱하다.
하긴 국전의 초대작가인 목정 아닌가.
"목정은 전각에도 능하다. 서예와 전각은 서로 변증법적 보완관계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 한 획을 쓰더라도 전각하듯이 마음을 쏟아야 하고, 또 전각할 때 역시 문자의 향이 돌에 배이도록 온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마치 진흙 으로 굽어낸 자기마냥 질박함이 서 있다.
목정에게는 수산이라는 법명이 따로 있다. 12년전 해인사의 혜암큰스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다. 비록 유발 상좌이긴 하지만 큰스님을 지성으로 모신다. 큰스님도 그를 무척 아끼기에 당신의 낙관을 목 에게 맡겨 놓고 있다. 스님이 글을 쓰실 때 항상 목정이 시봉을 맡는다.
말 없는 가운데 묵향이 방에 가득 번지고 낙관을 찍는 소리는 그 자체가 도와 신심의 한 경지를 그려낸다.
〔명신당〕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들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손님으로 드나 든다. 가게 바로 뒤에 살림집이 있는 데 2층은 서실이라 제자들이 드나들고 살림을 하는 아래층도 허구헌날 손님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미술인협회의 평범한 회원이 지만 서예인 쪽에 대한 목정의 교 는 대단히 넓다. 따라서 미술인과 서예인의 모임이나 특별한 행사 등이 있을 때면 살림집은 온통 남의 몫이된다.
또한 그의 깊은 ‘신심으로 인해 스님들의 발길도 매일 끊이지 않는다. 조계종의 스님만이 아니다. 여러 종단의 스님 승직자 등이 이곳을 찾아 쉬어 간다. 늦게 본 아기 뉘일 곳 조차 아쉽다.
목정의 부인 김명씨(40살)는 이런 북새통에도 전혀 싫은 기색이 없다. 그래 아는 이들은 부인에게 진심으로 ‘보살’이라는 칭호를 아끼지 않는다.
집안에 찾아드는 공적 사적인 손님만이 아니다. 인사동의 잡상인, 난장꾼, 걸인 등에게도 내침없이 가게의 한 자리를 내어준다. 따뜻한 차 한잔의 대접과 함께. 그러니 보살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 여주가 고향인 부인 또한 전각 솜씨에 있어서는 남에 뒤지지 않는다. 목정의 뒷바라지에다 가게일로 어쩌면 천부의 재질을 묵히고 있는지 모른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고 한다. 그래서 심성에 따라 좋아하는 문구나 서체도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다. 목정과 그 부인은 시비 가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심성이라 무위자연을 뜻하는 구절을 즐긴다.
‘빈 산에 사람 없으니 물 흐르고 꽃이 핀다’를 진짜 물 흐르듯 쓰고는 이내 자신의 글을 잊어버리고 연신 찾아드는 객을 맞기 바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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